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가 혼인성사를 해 준 신부님을 찾아와,
흥분하며 둘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신부님, 우리 부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아 신부님께서 혼인성사를 주셨으니 이혼도 해 주세요.” 부부는 막무가내로 생떼를 썼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조용히 입을 떼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조금 어려운 방법이라…”
“무엇이든지 이혼만 할 수 있으면 하겠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과 부부는 함께 성당으로 올라갔습니다.
두 부부를 혼인식 때처럼 제대 앞에 서게 했습니다.
갑자기 신부님은 쇠로 만든 성수채를 들어서 남편과 아내의 머리를
번갈아 세게 후려쳤습니다. “아이고! 신부님 왜 때리십니까?”
그러자 신부님 왈, “천주교의 혼인법에 따르면 한 사람이 죽어야
비로소 혼인이 풀리거든요. 그런데 두 분이 그렇게도 이혼을 원하니
이 방법밖에 없어서…”
오래 전에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우스개 소리입니다.
최근 들어 선진국은 이혼이 줄어드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 문제로 갈라서는 부부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자랑스럽게도(?) 이혼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로
올라섰다고 합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40~50대 부부의 이혼이
부쩍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특히 이혼의 요구를 아내가 하는
경우가 급격히 증가해,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혼 풍속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와 같은 물음은 결혼을
단순히 율법적인 차원에서만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두 사람
의 인격적인 만남이요 신비입니다.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완전하게 하나로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결혼을 성사로 규정해서 결혼하는 부부는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부족하고 나약한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고 완전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혼인성사
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 가정이 행복한 성가정이 되려면 인간적인 힘만으
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는 인내와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내와 겸손함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들은 “결혼은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러므로 자주 참을성이 필요하
다”고 했던 철학자 니체의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하겠습니다.
- 허영엽 신부
[복음 마르코 10,2-16]
그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남편이 아내
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일렀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이
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
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이 법을 제정해 준 것이다.
그런데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
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
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돌아와
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아내
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 하고 말
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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