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수녀회 인천 평화의 모후 관구

인천 지하철 계산역에 내리자마자, 수녀원에서 일러준 대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8차선 도로를 달리다 바로 골목길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산 중턱 쯤에 우리를 내려놓고는 갈 길 바쁘다는 듯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제대로 내렸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 너머로, 근처 공항 활주로를 금방 이륙한 듯 하늘을 향해 날아 올라가는 여객기 한 대를 발견했다.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을 찬찬히 올려다볼 수 있었다. 네모난 아파트에 갇혀 살며,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사무실에서 온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하루 중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주변이 온통 숲이어서 그랬을까? 그날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작은 안내 푯말을 따라 들어선 숲길에는 노틀담수녀회(관구장 이분희 안칠라 마리아 수녀)뿐 아니라 전교갈멜수녀회, 갈멜수도회, 이렇게 세 개의 수도회가 연이어 자리하고 있었다. 계양산을 배경으로 도로 초입에 자리한 노틀담수녀원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서 있는 노틀담장애인교육관 그리고 노틀담유치원의 주변 풍경은 마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피정의 집 분위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한적하면서 자연의 향기를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오로지 하느님만
이곳 본원에는 여러 공동체가 함께 모여 산다. 수녀회 관구 행정부서를 포함하는 본원 공동체가 있고, 양성공동체인 청원소와 수련소가 있다. 안내 담당 수녀를 따라 작은 응접실로 들어와 앉았다. 응접실 창문으로 보이는 수도원 마당에는 하늘빛 물에 금방 헹구어낸 듯한 싱그런 햇살이 가득하다. 방금 전 게시판에 장식된 ‘오로지 하느님만’(Soli Deo)이라는 문구가 화두처럼 머릿속에서 뱅뱅 돈다. 그건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수녀회의 맹서일 수도 있고, 하느님만 사랑할 것이라는 자기 선언일 수도 있고,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자신은 철저히 낮추고 비워야 한다는 단순성에 대한 깨달음일 수 있겠다는, 나름대로의 섣부른(?) 해석에 스스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른 이를 가슴 저리게 사랑해본 적이 있었는가?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 물음 앞에선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러워진다. 그 대상이 하느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교의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이 분명할진대.
“‘오직 하느님만’이라는 단순함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좋으심과 그분의 섭리적인 돌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본원 공동체 원장 김희순(마리 막달레네) 수녀에게 노틀담수녀회의 영성을 한마디로 간추려달라는 다소 무리한(?) 부탁을 했을 때 들려준 대답이었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 ‘영적인 어머니’로 통하는 성녀 줄리의 말이다. 그들은 그 증거의 방법으로 교육,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가톨릭 교리 교육을 택했다. 이는 노틀담수녀회가 19세기 독일 코스펠트에서 맨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리고 그들이 세상 끝날까지 해야 할 ‘영원한’ 사도직이기도 하다.
이곳 본원을 방문하기 며칠 전, 서울 계동에 자리한 노틀담교육관과 그 인근에 있는 그들의 사도직 장소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노틀담수녀회의 사도직을 가장 잘 드러내보여주는 곳’이라는, 이 수녀회 참사 윤명숙(마리 레티치아, 인천 박문여고 근무) 수녀의 귀띔 때문이었다. 그곳 교육관은 1967년 노틀담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면서, 1984년 인천 계양동으로 본원을 옮기기 전까지 수녀회 중심 역할을 해온 역사적인 장소였다.
현재 서울 노틀담교육관은 크게 네 개의 부서로 나뉘어 있다. ‘실천교리’라는 새로운 교육방법을 기초로 한국 교회에 맞는 교리 교육을 연구하고 거기에 걸맞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종교교육부가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몬테소리 교육방법으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속적인 연구와 강습을 병행하는 몬테소리 연구소가 있으며, 음악을 통한 교육과 치료 방법을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오르프(Orff) 연구소, 그리고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으로 전국 본당 단체나 예비신자, 여성 단체, 개인 들의 피정을 지도해주는 피정센터가 있다. 이외에도 성서백주간을 담당하고 지도하는 성서백주간 운영부가 있고, 인근에 그 지역의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을 돌봐주는 방과후 교실과 어린이집이 있어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교육관에서는 실천교리, 몬테소리, 오르프 교육방법에 대해 가톨릭과 관련된 유아교육기관이나 본당 주일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수도자, 교사, 부모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직접 보육시설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적용시키기도 합니다. 좋으신 하느님을 스스로 느끼고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나누는 것이지요.” 그날 교육관 곳곳을 안내해주었던 유재희(마리아 라우렌시아) 관장수녀는 다양한 교구와 재료들을 보여주며 교육관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준다. 지난 8월에는 실천교리교육의 창시자인 독일인 프란츠 케트(Frantz Kett) 씨를 직접 초청하여 3회에 걸친 연수회를 성황리에 치렀다. 그들의 교육방법은 학계나 관련 종사자들에게 늘 새롭고 다양하다고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상태다.
한국 그리고 세계 속의 노틀담
노틀담(Notre Dame)수녀회는 1967년, 마리 알렉산드라 수녀를 포함한 세 명의 독일인 수녀를 국내에 선교사로 파견했다. 그들의 한국 진출은 국내에 교육수녀회의 필요성을 절감한 전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산과 오산에 유아교육사업을 시작하고 인천교구로부터 인천 박문여중고를 인수 운영하게 되면서 점점 교육 사도직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물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회적인 여건과 요구도 바뀌고 회원수도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의 사도직은 더욱 전문화되었고 범위도 한층 넓어졌다. 현재 한국 회원수는 수련자를 포함하여 196명. 이들은 국내 29개 분원에서 교육 사도직, 사회복지 사도직, 본당 및 선교 사도직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노틀담수녀회는 세 개의 지류로 나뉜다. 그 중 하나는 1804년 성녀 줄리 빌리아르에 의해 프랑스 아미엥에서 창설되었지만 벨기에 나뮤르로 옮겨가면서 ‘나뮤르 노틀담수녀회’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성녀 줄리의 영성과 나뮤르 노틀담의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여 네델란드에서 창설된 ‘아메스포트 노틀담수녀회’이다. 세 번째 지류는 독일 코스펠트 공동체로 1850년, 아메스포트의 수녀들의 도움으로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와 그의 동료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에 의해 창설된 또 다른 노틀담수녀회이다. 한국 노틀담수녀회는 코스펠트 공동체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에 그들에게 성녀 줄리는 영적인 어머니로,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와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는 창설자로 불리운다.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와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의 원래 이름은 ‘힐리곤데 볼브링’ 그리고 ‘엘리사벳 큘링’이다. 19세기 종교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절, 젊은 여교사 힐리곤데 볼브링은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소명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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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용기·사진 / 이은희 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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