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봉인(Det Sjunde inseglet, 1956)

제 작 : 1956년 (스웨덴) 92분
감 독 : 잉그마르 베르히만 Ingmar Bergman
주 연 : 막스 폰 시도우 / 벵그트 애커롯 / 닐슨 포페 / 비비 안더슨
수 상 :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 (1918-2007)의 신과 죽음, 그리고 생의 의미를 집요하게 파헤친 스웨덴 최고작가의 문제작.. 베르히만은 북구적인 신비주의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줄기차게 탐구, 신의 문제와 인간의 본래의 모습 등을 탐구하는 중후한 감독으로 현대영화 예술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줄거리 :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은 요한묵시록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심판의 날이 다가온 듯한 곳에서 시작된다.
때는 中世. 14세기 중엽 십자군의 일원으로 출전하였던 기사 '안토니우스 브록크' (막스 폰 시도우) 는 시종 '이옌스'
(구나르 보른스트란드)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오는 그 앞에 느닷없이 검은 옷을 입은 '죽음의
신''(死神 - 벵크트 애커롯)이 나타났다. 기사를 데리러 온 것이다. 마침 패전하여 神에 대한 회의(懷疑)를 푿고 있던 기사는 아직 세상을 등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죽음의 신이 좋아하는 체스를 하자고 간청하면서 죽음의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때부터 기사는 눈 앞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 남은 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 등으로 착잡한 심정이었다.
기사는 포장마차를 타고 여행하던 곡예사 부부인 '욥' (닐슨 포페)과 '미아'( 비비 안더슨) 그리고 어릿광대 '스카트'
를 만났다. 욥은 대낮에도 꿈을 보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의 손을 이끌고 거니는 모습
을 볼수도 있었다. 이처럼 성스러운 감격 속에 도취할 수 있는 '욥'을 그의 아내는 지극히 사랑하여 둘은 행복한 가정
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반면 어릿광대 '스카트'는 속(俗) 된 인간이었다.
기사와 시종은 어느 교회 앞에서 말을 내렸다.
교회 안에서 가시관을 쓴 예수님의 고통스런 고상을 보고 기사는 자신의 회의를 신에게 고백했다. 최후의 체스 한
판을 남겨놓고 고백하려고 창구에 앉고보니 그 상대는 신부가 아니라 '죽음의 신'이었다. 깜짝 놀란 기사는 더 심한
회의에 빠졌다. 그런 반면 그의 시종 '이옌스'는 오직 자신의 육체만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귀로에서 여러가지 일을 본다. 전염병의 만연, 텅빈 마을에서 도둑질하는 신학교 동창생, 말세라고 외치는
사제들과 신자들이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며 지나가는 행렬 등..기사는 마녀를 처형하는 곳에 이르렀다. 마녀를
만나 악마의 존재를 묻고 싶었으나 그가 본 것은 화형장 앞에 선 마녀의 공포에 질린 표정 뿐이었다.
기사와 시종은 포장마차의 '욥'의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평화롭고 사랑에 감싸인 풍경을 보고 처음으로 기사 '안토니우스'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죽음의
신'과의 체스에서 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와 10년만에 아내를 다시 만나자 '죽음의 신' 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이때 모든 것을 깨달은 듯 기사는 두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아침.. 기사는 '죽음의 신' 에 이끌리어 검은 언덕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광경을 포장마차에서 내린 '욥' 이 멀리
서 보고 있었다.
이 위대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장례식이었다. 그는 삶의 끝자락을 침묵으로 봉인했다.
발트해를 바라보며 안식하고 있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소박한 무덤. 낮은 담장 아래 구석진 자리에 작은 철십자가 위에 종이로 쓴 Ingmar Bergman 이 전부였다.
세상을 향해 굳게 닫아 건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집 - 포러 섬 |
* 이 영화를 못 본 분들을 생각하며, 갖고 있는 오래 된 책 "명화수첩"/1971에서 발췌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