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년만에 신학원을 졸업합니다"

2011. 1. 15. 오전 1:41:28

글자
 


2000년 저는 신학원문을 두드린지 10년만에 졸업합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분은 신학원 제6대 김광식F.하비에르 원장신부님이십니다. 2000년 진건성당에서 이재열 주임신부님의 권유로 초등부주일학교 3학년교사를 하다가 제자 아버님이 주신 신학원 원서를 받아들고 신학원문을 두르렸다가 김광식원장신부님의 입학거절로 좌절의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이유는 저는 부모님의 강요로 26세때 계산성당에서 관면혼인식을 하였다가 27세에 이혼을 했고 신앙생활을 안하다가 29세에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홀로 생활하였는데 2000년에 진건본당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즉, 혼인무효소송을 한후에 신학원 공부를 하라시는 신부님의 명령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공부하면서 하면 안되냐고 여쭈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남자분이신 교무과장님의 권유로 통신교리2년과정을 하며 대구로 내려가서 혼인무효소송을 하였습니다. 그 해에 무효판결을 받았고, 2003년초에 남양주시 진건에서 서울 오금동성당으로 옮겼는데, 그해 9월에 김광식 원장신부님께서 신학원에서 신천본당으로 옮기셨다가 오금동성당 주임신부님으로 부임해오셨습니다. 당시 저는 신부님을 몰라뵈었고 아마 2004년도에 신부님을 알아뵙고 신부님께 "제가 신부님이 시키는대로 했으니까 신학원에 보내달라고" 공부를 하고싶지도 않으면서 떼를 썼습니다. 그래서, 2005년도에 드디어 신학원에 입학을 했죠... 저는 직장도 신학원 근처로 옮기고, 집도 신학원 근처로 옮겼으면서도 오금동성당에 약 1년동안 다녔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가 얼마나 이쁘셨는지 보내주지 않아서이죠 ㅎㅎㅎ 그러다가 오금동본당이 3공동체본당이 되면서 신부님께서는 이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로본당으로 옮겼고, 신부님을 오랫동안 가슴에 안고 살았습니다.... 하느님처럼요~~~
 






2005년 제나이 40세에 신학원에 입학했습니다^^



2003년 남양주시 진건에서 서울 방이동으로 이사와

오금동본당을 다니면서 

통신교리2년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으러 

신학원에 가니 김광식 신부님은 안계시고

이기락 원장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김광식 신부님께서는 오금동성당에 오셔서 

교리신학원에 보내주셨죠..

"신앙은 시작이며, 사랑은 마침이다"라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의 말을 가르쳐주시며

그렇게 신부님께서는 

어느덧, 제 옆으로 다가오시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시던 벗같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사진은 이기락신부님 은경축때 제가 신부님께

꽃을 달아드리던 사진입니다.

인사도 못드리고 2006년 휴학을 해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번 '기도의집 축복식'때 신부님을 뵈었지만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사랑을 느끼게하는 이기락신부님

제가슴속에 오랜동안 예수님으로 남아있습니다...



 

 


** 2010년 저는 기적적으로 복학했습니다...**



김진태 원장신부님께서는 제가 어디에 있어야할지 모를때에 제가 있어야할 자리를 다른 사람을 통해 안내해주시는 성령과 같은분이셨습니다. 2005년1학년1학기때에 그랬고, 제가 휴학을 하기전 휴학한다고 말씀은 못 드렸지만 저희 37기 청년팀들과 대학로에서 삼겹살도 함께 드셨고, 후기로 저와 동기형제와 테이크아웃에서 커피도 마셨죠~~ 그날 이후 그렇게 신부님을 오랬동안 잊지 못하고있다가 2008년 11월에 엄마네집 영천으로 갔다가 2009년 3월에 대구로 가서 직장을 다녔죠. 대구 계산성당에서 본당 주임신부님의 마르코복음 강의도 들었고, 구약성서나눔도 했어요. 그런동안에 직장에서는 사고가 생겨 몇달동안 급여도 못받고, 다른사람의 실수로 제가 돈도 물어 넣고, 전 정말 가족들에게 얼굴도 못들고 다닐정도로 챙피하고 가난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하루에 12시간씩 약3개월을 일하면서, 어느날 엄마에게 빌린돈, 남동생에게 빌린돈 모두 갚고나서도 100만원정도가 남았습니다. 뜨거운 여름~ 저는 이 피같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교리신학원 복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때에는 미사도 못갔어요. 주일에도 일하고, 성당도 안보였어요.. 엘리사벳이 저를 위해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세계위에서 드리는 미사/떼이야르 드 샤르댕-김진태 옮김] 을 항상 생각했습니다.(희미한 내용과 선명한 제목을요 ㅋㅋㅋ) 그리고 이렇게 저는 다시 돌아와 김진태 원장신부님과 재회를 했습니다 ㅋㅋㅋ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를 하고, 전 이제 며칠있으면 졸업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졸업을 하죠.. 성령같으신 김진태원장신부님을 뵈면 항상 떨려요. 신부님께서는 제6대 김광식 원장신부님을 모셨고, 제7대 이기락 원장신부님을 모셨고, 지금은 제8대 원장신부님으로 계시죠... 제가 신학원문을 두드릴때부터 지금 이시간까지 성령께서 얼마나 제곁에서 활동하셨는지 생각하게되니까요~~~ - 오늘 들으실 곡은 '장윤정'의 '첫사랑'입니다 -


댓글 6

  • 2011년 1월 15일 오후 7:49

    아녜스자매님! 주님의 은총에 행복해 하고 감사하고 계시네요. 또한, 우리 카페가 님들로 인하여 풍성해 졌네요.

  • 2011년 1월 15일 오후 9:30

    박동주 형제님 감사합니다. 오히려 형제자매님들의 댓글로 카페가 더 오동통통 살이 찌는것 같아요. 저는 41회 형제자매님들의 도움과 따뜻한 형제애로 무사히 한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하게되어 나눔을 꼭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고나니 형제자매님들이 더 보고싶군요. 카페에라도 자주 들어오셔서 저희와 함께해요^^

  • 2011년 1월 16일 오전 3:00

    아녜스 !!눈물날려고 해요. 그런 저런 일들이 많았어도 다 이기고, 신학원의 졸업생의 한 사람이 되어서 기뻐요. 사진 잘 봤습니다.

  • 2011년 1월 16일 오후 12:48

    언니, 카페 방 만드시느라 고생많으셨죠. 배움방등 카페에 방이 많으니까 부자가 된 기분이에요. 빨리 방장들과 방을 방문하는 학우님들로 가득찼으면 좋겠어요. 언니, 홧팅!!

  • 2011년 1월 18일 오후 2:17

    주님께서 고통을 주고 그것을 이겨내며 포기의 영성을 느낄때 더 긴요하게 쓰신ㄴ다합니다. 아녜스자매님!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갖게 해주어 감사하며 항시 맑은 웃음을 잃지 않기를 기도드릴께요...

  • 2011년 1월 18일 오후 7:59

    박형규 형제님, 격려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조금 위신것처럼 젊어보이시는데, 10살정도 위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만큼 젊게 사시는 거겠죠. 자주 들어오셔서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