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

2012년도 5월

종교41기 학우님들 보고 싶습니다.

 아래의 동영상 2개 보시며 좋은 시간 되세용.

 

 

루르드의 성모님☜ 동영상 바로가기

 

랑스 루르드(lourdes) 성모님

 

 

 

1. 발현

프랑스 남쪽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의 산록에 위치한 루르드는 1858년 2월 11일 이후 18회에 걸쳐 성모 마리아께서 벨라뎃다(1844-1878) 소녀에게 발현하신 후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유명해진 곳이다. 가브강이 흐르고 그 중간에는 살레섬이 있어서 강물을 두 갈래로 나누고 있지만, 그것이 다시 합류되는 곳에 큰 절벽이 있고 그 가운데 마사비엘(massabielle)이라고 부르는 동굴이 있다. 이 곳이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이다. 이스라엘 성지를 제외하고 현대에 가장 유명한 순레지로 꼽히고 있다. 해 마다 순례자가 늘어나 지금은 연중 4백만이 넘는 순례자들이 루르드를 찾고 있다. 1858년2월11일부터 7월16일까지 성모님께서 18번 벨라뎃다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의 발현 당시 벨라뎃다의 나이는 14세였다. 2월 18일 성모님은 세 번째 나타나셔서 벨라뎃다에게 2주간 동안 계속 동굴에 와달라고 부탁하시고 벨라뎃다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해주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모님의 이 약속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벨라뎃다 축일을 돌아가신 날짜가 아닌 이 날 2월 18일에 지낸다. 2월 24일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한 보속으로 무릎을 꿇고 걸으며 땅에 입맞추라 하셨다.

7월 16일 18번째를 마지막으로 성모님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루르드는 세계 어느 순례지 보다 어머니 품에서 처럼 포근하게 기도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성모님의 발현이래 이 곳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이 기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절룸발이가 목발을 버리게 되고 여러 가지 불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동굴 벽에는 이들이 봉헌한 기적의 증거물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음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너무나 많아서 관리자들이 수시로 치우지만 금방 또 걸리곤 한다.

그러나 루르드의 참다운 가치는 이러한 외적인 기적 보다 내적인 기적에서 찾아야 한다. 20년 또는 30년 동안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고 냉담자가 회두하고 근심이 쌓인 사람이 평화와 위로를 얻으며 기적을 바라고 왔던 사람들이 병이 오히려 더 심해져도 실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돌아가게 되는 곳이다. 성모님을 만나고 성모님의 위로를 안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루르드의 성모님께서는 벨라뎃다에게 "여기에 성당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들기를 원한다고 본당신부에게 말하라"고 당부하셨고, 또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도 당부하셨다.

 

2. 원죄없이 잉태된 자의 대성당(無染始胎大聖堂)

9번째의 발현이 있은 2월 24일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한 보속으로 무릎을 꿇고 걸으며 땅에 입맞추라 하셨다. 그러면서 "여기를 파 보아라. 샘이 솟아날 것이다. 너희는 속죄하는 뜻으로 이 물로 씻고 마셔라"라고 지시를 하셨다. 이 것이야 말로 수많은 병자들을 낫게 한 정화수(淨化水) 인 것이다. 이 물을 흔히 기적수 또는 영적수라고 하는데 이 말은 적합하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속죄의 뜻으로 이 물을 마시고 또 씻으면 그 믿음과 회개하는 마음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 이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수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이 때부터 이 조그마한 샘에서 매일 12만 2천 4백 리터의 물이 오늘날까지 솟아오르고 있다. 벨라뎃다는 1866년 느베르 수녀회에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1879년 4월 16일 이 세상을 떠난 벨라뎃다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3년 12월 8일 역시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로써 벨라뎃다는 성인의 반열에 들 게 되었고 성모님께서 벨라뎃다에게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 이다." 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셨다.

 

3. 마사비엘 동굴
1858년2월11일부터 7월16일까지 성모님께서 18번 벨라뎃다에게 이런 모습으로 발현하셨다. 성모님의 발현 당시 벨라뎃다의 나이는 14세였다. 2월 18일 성모님은 세 번째 나타나셔서 벨라뎃다에게 2주간 동안 계속 동굴에 와달라고 부탁하시고 벨라뎃다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주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모님의 이 약속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벨라뎃다 축일을 돌아가신 날짜가 아닌 이 날 2월 18일에 지낸다. 2월 24일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한 보속으로 무릎을 꿇고 걸으며 땅에 입맞추라 하셨다. 7월 16일 18번 째를 마지막으로 성모님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지금 동굴 속에는 제대가 있고 이 제대에서는 연 중 내내 미사가 바쳐지고 동굴 앞에서는 신자들이 밤낮 없이 기도하며 순례자들이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하는 뜻으로 봉헌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크기에 따라 값이 다르다. 24시간, 365일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동굴 전체가 하나의 바위인데 순례자들의 손길에 닳아서 반질반질하다. 순례자들은 겸손과 경애의 표시로 이 바위에 입마춤을 한다. 너무나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수도 꼭지를 통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러나 이 물은 속죄의 뜻으로 씻고 마셔야 한다. 그런데 흔히 중환자들을 위한 무슨 비상약인 듯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굴을 향해서 왼편에 마실 물의 수도꼭지가 있고, 오른편에 몸을 씻는 곳이 있다. 몸을 씻는다고 해서 우리의 공중 목욕탕 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냥 옷을 벗고 잠시 침수하면 된다. 옆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도와 준다.

침수상태에서 주의기도를 한번 바치면 끝난다. 겨울 철에도 침수를 하는데, 신통하게도 침수하고 나면 온 몸이 후끈거려 오히려 몸이 더 따뜻해진다. 동정 성모께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 사이에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18번 나타나셨던 곳이다. 성모상은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던 바로 그 모습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성모님께서는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 라고 말씀하시면서 벨라뎃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셨다. 성모상 아래 자물쇠로 잠겨진 유리판 아래에는 1858년 2월 25일 아홉 번째 발현 당시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벨라뎃다가 땅을 파헤쳤을 때 솟았던 샘이 있다.

 

4. 벨라뎃다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벨라뎃다는 1860∼1866년 느베르(Nevers)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 (Le Couvent des Soeurs de la Charite)에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1864년 8월 이 수녀회에 입회하기를 원하였지만,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66년 7월 느베르의 성 질다르(S. Gildard) 수련소에 입회하여 그 해 7월 29일에 착복식을 한 후, 마리 베르나르(Marie Bernard)라는 이름으로 서원하였다. 벨라뎃다는 이곳에서 종교 교육을 받은 뒤 기도와 은둔 속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는데, 이 기간 동안 그녀는 발현 체험으로 인해 얻은 명성의 고통으로부터 보호는 받았지만, 수도원 장상들의 경직된 태도와 계속되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수도원에서의 생활을 행복하게 생각하였으며 상냥함과 경건함과 기지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으면서도 자신에게 나타났던 성모 마리아의 참회 요구를 충실하게 이행하였고,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비우는 생활을 하였다. 사실 그녀의 일생은 발현을 체험한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극히 평범한 삶이었다. 1879년 4월 16일 건강이 악화되어 35세의 나이로 수도원에서 사망한 벨라뎃다는 수도원 성당 내에 묻혔다.

 

벨라뎃다에게 나타난 성모 발현이 1862년 1월 18일 타르브(Tarbes) 교구의 로랑스(Laurence) 주교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루르드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벨라뎃다는 루르드가 순례지로서 발전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1866년에는 벨라뎃다가 참석한 가운데 지하 성당이 봉헌되었으며, 1876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전이 축성되었다.

부패되지 않은 그녀의 시신이 1913년 8월 13일부터 사람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하였고, 1925년 6월 14일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1922∼1939)에 의해 시성되었다. 벨라뎃다가 시성된 것은 그녀가 성모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겸허한 단순성과 그녀의 전생애를 통해 보여 주었던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신뢰심 때문이었다.

 

 

- 서울마리아센터 월간 소식지(40호)자료 편집-
 

 

 

 

파티마의 성모님 ☜ 동영상 바로가기

 

파티마의 성모님

파티마 성모상은 1917년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모습에 따라 만든 것입니다.

파티마 성모상의 공통된 특징은 흰 베일을 머리에 쓰셨는데, 그 베일이 망토처럼 온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또한 처음 발현하셨을 때, 작은 나무 위에 나타나셨고, 구름을 타고 오셨기에 대부분의 파티마 성모상은 구름 위에 서 계시고

자세히 보면 아래엔 나무가 있습니다.

베일 안쪽으로는 허리에 얇은 띠를 감고 계시며 무릎 아래쪽에는 옷에 큰 별 무늬가 있습니다. (생략된 성상도 있습니다)

손의 모양은 ‘나는 묵주기도의 여왕이다’라고 당신을 소개하셨듯이, 묵주를 쥐고 계신 모습과 그냥 손을 모으고 계신 모습,

오른손은 축복하는 듯한 자세, 왼손은 받아들이시는 듯한 자세로 계신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발현 당시 가슴에 불꽃이 타고 있는 성심을 보여주신 경우입니다.

 

1917년,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어린 목동들에게 발현하셨을 때, 그 분은 러시아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발현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루치아는 10살에 성모발현을 목격했는데 그때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습니다.

루치아는 겸손했고, 파티마 작은 마을 알유스트렐 농가의 7남매 중 막내로 자랐으며 유머 감각이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은 코바 다 이리아에서 1917년 5월 13일에 시작되었습니다.

파티마 메시지의 핵심은 회심, 기도, 보속입니다. 발현은 10월 13일까지 여러 달 동안 계속 되었는데

그날은 기적이 있으리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에 약 7만 명의 구경꾼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교회에 적대적인 신문 『오 세쿨로』지에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마치 뿌연 은쟁반같이 보였고, 맨눈으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태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태양이 회전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 순간 커다란 외침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기적이다! 기적이다!’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놀라서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앞에서

태양은 요동치며 갑자기 믿을 수 없게도 자연 법칙을 거슬러 움직였다.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태양이 ‘춤을 췄다….’

사람들은 서로 무엇을 봤는지 묻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양이 요동치며 춤추는 걸 보았다고 진술했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하신 동정녀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양이 거대한 불 바퀴처럼 저절로 회전했으며 태양 광선으로 지구를 태워버릴 듯이 지상으로 돌진했다고 맹세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태양이 끊임없이 여러 가지 빛깔로 변했다고 말했다.”

 

루치아의 사촌인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1918년과 1919년에 죽었습니다.

루치아 수녀는 파티마 발현을 증언하기 위해 남겨졌습니다.

 

성모님은 루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곧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를 데려가겠다. 그러나 너는 내게 올 때까지 좀 더 여기 남아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알고 사랑하는 걸 배우도록 예수님께서는 너를 필요로 하신다.

내 티없는 성심이 온 세상에서 공경 받게 되기를 예수님께서 원하신다.”

 

성모님은 루치아가 읽고 쓰는 걸 배우기 위해 마을 학교에 다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족들을 성가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16살이된 딸 루치아를 1923년 파티마에서 떨어진 포르토 인근 마을에 있는

도로티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리아 다스 도레스(고통의 마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성모님은 스탈린의 무력 혁명이 시작되던 1929년,

온 세상을, 특히 러시아를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에 봉헌할 것을 교황에게 청하라고 루치아 수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때까지 파티마에 그 어떤 공식적인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5년 동안 천만 명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농민들이 굶어 죽었고, 수백만 명이 강제 수용소에서

그리고 ‘숙청’에 의해 죽었습니다.

 

파티마의 예언 중 하나로, 성모님께서는 북쪽 하늘에 엄청나게 밝은 빛이 보이면 이 전쟁이 시작된다는 표시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938년 1월 25일, 전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보통 때와는 아주 다른 오로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빛은 50만km의 넓이를 뒤덮었고 그 높이가 700km에 달했다고 합니다.

붉은 빛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해인 1939년 전쟁이 터졌습니다.

두 달 후,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여름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으로 점령하였습니다.

루치아 수녀는 원치 않은 유명세 때문에 루치아 수녀는 평화를 얻지 못했기에 1946년 포르투갈로 돌아와서,

교황 비오 12세의 허락을 받고 41세의 나이로 코임브라 산타 데레사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갔으며 거기에서 57년간을 보냈습니다.

 

파티마는 아랍식 이름입니다. 이슬람교도들도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해 파티마에 옵니다.

그리고 많은 이슬람 여인들은 마돈나의 발현에 매혹되었습니다.

파티마 메시지는 전투적인 이슬람주의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아주 잘 해낼 것입니다.

 

루치아 수녀는 2005년 2월 13일 5시 25분에 포르투갈 코임브라의 가르멜 수도원 에서 98세의 나이로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녀는 갈멜수녀로서 수천 개의 묵주를 만들면서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수없이 많은 청원의 편지에

그녀는 70년대에 이미 전동 타자기를 이용해서 답했으며, 1984년에는 포르투갈에서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였으며 그것을 가지고 94세 때까지도 계속해서 청원의 편지에 답을 했다고 합니다.

 

 

-교리신학원 43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