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셋째날 (마지막편)

2010. 11. 8. 오후 12:08:36

글자
 
 
모두 건강하게 잘 다녀 오셔서 서로 감사합니다.
자료실에도 이 글을 올렸습니다.
여기는 글간이나 줄간이 흐트러 져서 잘 안 보일수도 있어서
자료실에다 파일로 올렸습니다.

수학여행 셋째 날

   여행 셋째 날. 오늘은 주일이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식사후에 바닷가에 나왔다. 이순신 장군의 싸움터 였던 (조선 선조 25년(1592)에 한산도 앞바다, 임란 삼대첩의 하나,) (임진왜란 때 3대첩, 김시민의 진주성대첩, 권율의 행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 그곳!~~우리? 아니 나는 이제야 여기를 와 본다. 그분이 이 터전을 우리에게 남겨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과 한 판을 벌였던 이곳? 우리는 감히 이순신 장군의 뒤를 따라서 이 뱃길을 노닐고 있다. 이 주위에 이락사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가이드(형규님)의 설명에 의하면 ‘이씨가 떨어졌다’는 뜻이며, 장군의 ‘말’이 그 옆에서 죽었다는 후문이라 한다. 배는 좁은 바닷길로 누누이 가고 있고, 우리는 새우깡을 손에 들고, 기러기와 한판을 놀았다. 녹색의 칩옆수 위에 흰 솜털을 뿌려 놓은 듯 갈매기 떼 꽃을 피우고, 몇 놈은 우리를 아직도 따라다니며 맛있다고 끼~익~ 더 달라고 까~오 하며 공중 놀이로 쇼를 하고 있다. 배 안에서는 자매들의 귀여운 춤이 잠깐 나오다 말았다. 흥이 덜 나는 모양이다. 나는 이 바다를 보니, 자꾸만 진도(우리나라3번째섬)대교 울돌목이 생각이 난다. 울돌목은 그야말로 이순신 장군이 실감나게 싸운 그림이 그려지는 장소이다. 명량대첩 (선조 30년(1597)에 이순신의 수군이 명량에서 왜선을 이김) 진도대교에는 이순신의 유적지로 전설적인 일화가 정말 많다. 다 늘어놓을 수는 없고... (강강술래 봉우리의 일화 멋짐)

   아파트 6층에 해당하는 높은 배들이 서있는 바다(1968년에 한려 해상 국립 공원)를 눈에 담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 미사를 드리기 위해 문산 성당으로 향한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새 신부님의 안수가 이어졌다. 우리는 왠떡? 나란히 새 신부님의 안수를 받고, 행복한 맘으로 미사를 드린다. 오늘의 복음은 루까복음: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학우들은 참으로 이 말씀을 잘 지키는 성실한 신자들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 부원장 신부님의 강론 말씀 : “우리는 식별력 있는 기도를 해야 하고, 무엇이 겸손이고 정당한지, 알고 기도해야 한다.”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다. 또 내년에 성서 영성학과에 꼭 들어오라는 말씀도 몇 번째 하셨다. 그리고 새로이 신학원에서 장만한 건물에 27일 개원식을 한다고 하신다. 선교사들의 아지트가 되기를 바라시는 원장신부님의 배려이시다.

   낯 서른 성당의 제단에 신부님이 서 계신 뒷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제대의 모습이 색 다르다. 우선 이 제대의 중앙 뒷쪽에 십자가 자리에 큰 십자가가 본당신부(화가)님이 천에다 그린 그림이 (placard)로 크게 걸어져 있다. 처음 보는 배경이고, 제대 뒤쪽에는 초를 많이 올릴 수 있는 층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작은 십자가가 있고,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중국성지에서 받아들인 컨셉 이라던가? 초를 거기에 켜고 제대위는 안 켰다. 그 뒤로 신부님이나 복사가 제단으로 나올 수 있는 문이 감춰져 있다. 연극 볼 때 무대에서 붕~ 하고 떠 올라오는, 갑자기 나타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제대위 제대 보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빵이 그려져 있고, 제단은 넓은데, 에어컨이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다. 성당 건축당시의 미리보기가 잘 못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님 시골이라고 에어컨을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단위의 에어컨을 벽을 뚫고 놓으면 어떨까? 괜히 남의 일에 신경이 쓰인다. 미사가 끝났다. 똑같은 성체인데 새롭다.

(우리의 헌금은 성지개발비)

 

   그리고 성당 벽의 stained glass 가 아주 멋졌다. 시골 성당 치고는 아주 짜임새 있는 건물 구조와 마당이 우리의 눈을 이끌었다. 식당 지붕은 한옥으로 지어져 있었다. 왠 기와집? 들여다보니 미사 끝난 신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여느 교회처럼) 주일 미사가 끝나면 점심을 한 가족처럼 먹는다고 한다. 천주교에서는 보기 드문 풍습이다. 형제님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나는 마당에서 신부님들끼리 하시는 대화가 들린다. 우리 부원장님은 문산신부님이 그림을 잘 그리신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 신부님과 뒤에서 그림 판매 하시는 신자들은 우리에게 그림을 판매하는데 신경을 쓴다. 성지 개발의 자금조달이었다.

(성지마다 가면 그러하다.)

 

   설거지 하는 형제님들의 모습을 보고 아 ~저것이 봉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슬비에 옷깃을 여미며, 성지로 향했다. “무두(無頭)묘(정찬문(안토니오)라 한다. 그 옆에는 작은 공소가 하나 있다. 성지는 넓게 개발되고 있었다. 1822년 10월 13일 외아들로 태어난 진양 정씨, 윤씨와 혼인한 후 부인의 권면으로 입교, 고종 때 천주교 박해가 있었으나 전교활동에 열중하였다. 그러다 병인박해“때 체포,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가혹한 고문 끝에 참수, (1866년 12월 20일”) 그의 나이 45세. 그리고 1947년 문산본당 주임 서정도(베르나르도) 신부가 광산 김씨의 증언으로 무두묘 확인, 기념비를 세웠다.

   성지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우리 수녀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가 봤다. 정말 예수님의 십자가만큼이나 큰 십자가가 서 있었다. 아마도 제단을 꾸미고, 이 넓은(754평) 잔디밭은 수많은 신자들이 모여서 미사를 드릴 예정으로 보였다. 이 지역 옥본, 문산, 칠암, 장재, 사천 본당 등 신자들이 이 성지에서 정찬문 순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주님께서는 꼭 들어 주실 것으로 믿고, 언젠가 여기에는 “전찬문성인의 묘”라고 써져 있기를 바라며 우리는 성지를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점심~~~~

 

   전주비빔밥은 늘 먹어 봤지만, 진주비빔밥은 처음으로 먹는다. 내 짝꿍 로사 언니를 불렀다. “언니 여기 자리 있어요. 이리오세요” 신부님 식사 준비에 바쁜 로사 언니 대답 “응 잠깐 있어~ 내가 인기가 워낙에 좋아서~” 하면서 계속 신부님의 옆에는 누굴 앉히고, 음식은 어떻게 놓고, 신부님의 불편함을 없애려고(와따리 가따리) 부족함 없이 준비 중이시다. 로사 언니와 라파엘라가 있어서 또한 신부님의 식사가 충분하시지 않았을까?

신부님이 어제 저녁도 부실하셔서 걱정을 하고, 건강해 지시기를 바라는 학우들!! 모두 걱정들을 한다. 우리는 맛나게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이제 2박3일의 일정을 마쳤다. 날씨가 우리의 여행을 받쳐주었다. 오늘은 가랑비가 살짝살짝 왔으나, 우리는 모자 쓰고 이동~ 다시 차에 와서 말리곤 하여, 별 지장 없이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즐겁게 ㅎㅎㅎ. 그러나 무두묘를 볼 때는 모두 숙연한 자세로 기도 하였다. 가장 걱정되었던 일은 신부님이 첫날 저녁에 식사를 못 하셨다는 일 땜에, 하지만 둘째날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지도해 주셨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신부님이 재미로 우리와 같이 오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신자들(학우님들)을 보살피시기 위해, 목적 있는 지도차원에서 함께 해 주신 신부님께 우리는 더 감사하고, 즐거운 졸업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이제 할 일은 곧장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 부웅~부웅~~~~~~~~ 우리는 서울로 향하여~~~

 

   최남단에서 북쪽으로 버스는 달린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그 곳으로 컴백(Comeback) ~·~모두 이슬비도 맞고, 바쁜 일정에 맞추느라 피곤도 했을 것이다. 학우들과 신부님도 모두 잠들고, 기사님만 안전운전 하시느라고 바쁘셨다. 한참을 자고 한 사람 두 사람 눈을 뜬다. 서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급한 목소리~~쥴리안나 학우님의 마이코 테스토(?) 아 ~아~~ 쫙 쫙 쫙 ~~~~~~

 

   쥴리안나 학우님은 다시 우리가 즐겨 부르던 아까 그 노래?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갈까 말까 에라 가자.....노래 대항을 시켰다. 오른쪽과 왼쪽의 학우님들이 잠에서 모두 깨어 자기편이 이겨야 선물을 준다 하니 눈이 반짝거렸다. 쥴리안나는 예쁜 목소리로 중간 중간 한 사람씩 불러내어 노래나 장기 자랑을 하게 했다. 신부님은 나의 앞 자리에서 열심히 정말 열심히 박수를 치시며 노래를 따라 하셨다. 순간 이 버스가 동창회 소풍이었다면 중앙에 나와서 춤도 추고 (관광춤) 정신없이 놀았을 가능성이 큰데, 지금 우리는 너무도 얌전하게 건전한 박수와 노래를 하고 있다. 대표님의 멋진 노래나, 좋은 말씀도 하셔야되는데 목소리가 탁 멎었다. (얼마나 답답 하셨을까용?)

   오늘이 있기까지 노력하신 공이 얼마나 많으신데 한 말씀도 할 수 없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또 다른 사람을 불러내어 “한 말씀 하소서”를 위해 마이크가 돌아다닌다. 다들 노래를 잘하고, 특히 2일째부터 합류한 바오로 학우님이 오신 뒤부터 우리는 활기를 더 뛴 이유가 있다. 모든 지리적, 유적지, 가는 곳 마다 설명 해 주셔서 가이드맨으로 인정했고, 너무 감사했다. 맨 뒷자석에서 “소형 하프”를 은은하게 팅겨 주는 멋진 음악인 마론 학우님, 고맙습니다, 그 소리에 맞춰서 노래, 춤, 미소, 빠질 때 없는 소피아 학우님, 항상 선두주자로 활동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는 사이 또 사진 한 장 찰칵!! 우리반 학습부장님! 모든 자료 챙겨주시는데, 오늘은 사진으로 또 봉사를 하시네여. 늘 감사합니다. 또한 엘리사벳과 바오로님. 우리 반의 보물, 행사 때마다 앞장서 보여 주시고, 부부의 참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시는데, 답사하시느라 수고 하셨고, 지금도 남편은 앞에서, 부인은 뒤에서 (과일 깎기) 봉사를 해 주시는군요. 복 많이 받으셔요. 앞줄에 앉아 계신 프란치스코 학우님! 정말 지식인이란 말이 어울리는 분이죠. 항상 고도의 설명을 해 주시고, 어제도 불교의 부도에 대한 설명을 교수님처럼 명강의,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형제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시는 지식인 전 대표님과 이병일 바오로 학우님, 시메온대표님! 항상 대화 속에 높은 경륜이 들어 있지요. 여문 벼는 고개를 숙인다고 늘 겸손하시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분들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감을 깎아서 앞으로 배달해 주시는 젊은 총무님! 항상 앞에서 힘든 일은 다 하고, 수업 중에도 후다닥 뛰어 내려가 복사해 오고, 지난번에 아버님을 하늘나라 보내 드리고, 가슴이 텅 비어 있을 터인데도 합류하여 줘서 너무 감사하고 예쁜 딸 건강하고 가족이 행복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라파엘라 학우님! 항상 힘든(책 나누기 등)일을 해 주시고 선두주자로 첫기도와 마침까지 책임져주어서 고맙습니다. 홍보나 여성대표님! 2년씩이나 우리 반이 별 어려움 없이 무난히 학업을 마치게 도와 주셔서 감하합니다. 여기에 우리반 얼굴들을 일일이 나열은 못하지만 모두 감사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짝꿍 로사 언니! 항상 그릇이 크신 분! 맏언니? 맏 며느리 다운 모습이 배어 있는 분입니다. 학우님들을 위해서도 항상 큰누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언니는 윗 전에 잘 하고, 아랫사람을 보살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활습성이 돋보입니다. 사랑합니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즐거운 졸업여행 이었습니다.

종교 2학년 학우님들 파이팅!!!~~~~~~~~~~

(제가 글 쓰는 제주도 없고, 연습도 안 되어 있는데 우리반 학우님들이 아무도 쓸 생각을 안 하셔서 생각 없이 썼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 2

  • 2010년 11월 15일 오후 11:50

    이제사 보게되어 - 가보지않아도 본듯한 부연설명에 느낌까지 대단해요 달자언니! 사랑해요!

  • 2010년 12월 4일 오후 10:19

    월자님 시험이 아니었으면 이 좋은 글을 놓칠 뻔 했네요 정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