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후기 첫째날 올렸습니다.

2010. 11. 3. 오후 2:00:06

글자
 
               종교 2학년 학우님들 !!
수학여행 후기를 졸필로 써서 올렸습니다.
여기엔 그냥 올리고, 자료실에는 한글 파일로 올렸으니 
게시판은 글간이나 줄간이 흐트러저서 글이 이쁘지 않고, 자료실의 글은 파일 그대로이니 보기에 좋습니다. 또한 들어가기 편리한  
방에서 보기 위함입니다.  
 
 

수학여행

(2010,10,22) 종교교육2학년

학우님들의 얼굴이 오늘따라 환하게 웃고 있다.

어디를 가기 위해 만남의 장소(혜화동 성당 앞)에서 이렇게 가방을 메고, 들고 모여 드는 것일까?

 

  누가 : 종교교육2학년 학우들과 신부님, (33명)

  언제 : 2010,10,22 금. ~ 10,24 일요일까지. (2박3일)

어디서 : 노고단, 보리암, 남해대교, 허유경당 성지순례에서...

무엇을 : 졸업 테마여행,

어떻게 : 전세버스, 학우들의 사랑을 자연과 나누며.

     왜 : 동기생이라는 친분을 도모하기 위해서.

 

   오늘은 종교 교육학과 학우들이 졸업여행 가는 날이다. 하늘도 우리를 도와서 맑고 높은 가을 속으로 우리를 품어 인도 한다. 하나 둘 모여드는 곳에는 “세정여행사” 기사님이 우리를 반겨 준다.08시에 학교에서 미사를 드리고 2박3일이라는 여정에 발을 딛고 있다.

   초딩 시절 소풍가는 기분으로 혜화동을 출발하여 환경단체가 혈압을 올리던 새만금(?)에 도착, 버스가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바다 한 복판길! (세계 최장의 방조제 33km)오른쪽은 바다요. 왼쪽은 강이라? 그러니까 담수와 갯물이 길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굴비라면 영광을 떠올리는데 그 굴비 마을에 도착, 제일 큰 “일번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냠냠~~굴비가 서울에서 사는 것 보다 맛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하고 나오는데 대표(시메온)님의 말씀!! “여기 있는 굴비들이 모두 중국에서 잡은 가랍니다.” “어머나 영광굴비를 왜 중국에서 잡나요?” “네~~ 우리나라에서는 굴비가 잡히지 않으니 중국에서 잡아다가 소금을 뿌리고 말리는 작업만 영광에서 한다고 하더군요.” 영광 굴비라고 맛있게 먹었더니만 아니 중국에서 가져와 갈무리만 영광에서 한다니 무언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길섶에 전시된 팔뚝만한 굴비가 아까는 맛있어 보였으나, 지금은 이것도 중국에서 잡은 굴비구나! 하고 생각하니 중국이 아님 우린 뭘 먹고 살 것인지?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의 바다는 무엇이 다른지? 무엇이 바다에 고기어장을 빈 수레로 만드는 것인지? 고기들의 생태계에도 지구 온난화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쳐들어 간다.

    영광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백수 해안도로”로 가는 길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인지 야고보 형제님이 “멀미”를 하였다. 그래서 낯 설은 그곳에 홀로 내려 두고, 우리만 한 바퀴를 돌고 다시 태우고 (ㅎㅎㅎ) 낭떠러지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 멈췄다. 지역 발전을 위해 관광객이 편리하게 해안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여기저기 설치해 놓았다. 우리는 수다를 떨면서 그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에는 먼저 내려간 야고보님이 철석거리는 바닷물 가까이 내려가더니 신발을 벗고, 모자와 소지품을 가지런히 놓은 채 뛰어내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뒤에서 “동주야 그만 두거라, 엄마를 생각해야쥐, 위험하다 어서 올라와” 하며 제각기 웃으며 갑자기 야자 타임으로 들어갔다. ㅎㅎㅎ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소리지르는 바람에 야고보님은 씩~ 웃으며 올라왔다.

(멀미 재롱 부렸나 ㅎ ㅎ ㅎ )

   그리고 어느새 노고단 관광호텔에 도착 저녁을 호텔식당에서 먹고 각자 위치한 방으로 들어왔다. 나의 방식구들은 홍보나, 이현주, 정금숙, 정월자 이렇게 4명이 팀원이 되었다. 서로를 잘 모르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식구로 정해진 듯하였다. 모난 사람도 없고, (있더라도 잘 어울려야 하는)우리는 학우로서 그저 참 좋은 시간을 예감하고 있었다. 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은 일찍 주무시게 하고, 세수를 한 다음, 우리는 그냥 이 밤을 보내기 아까워 제일 큰 방, 형제님들이 모인 방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기 보다는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잘 놀아보세” 였다. 술과 과일. 안주 등을 펼쳐놓고 좌담을 하고 크게 웃고, 학교 책상이 멀어서 나누지 못했던 대화들을 나누고, 제각기 지방방송으로 떠들어 댔다. 대표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목감기 때문에 그저 쳐다만 보시는....(답답하셨을 꺼얌)_그러자 전 대표님의 주 통합 방송으로 우리는 귀를 기울이며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고, 뜻있는 사람들의 “한 말씀 하소서”가 이어졌다. 그 방은 구석으로 깊게 들어간 기역자 방이었다. 나는 그 기역자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틸다, 엘리사벳과 나는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앉았다. 처음에는 벽에 등을 대고~ 그 다음엔 다리를 펴고~ 그 다음엔 이불을 발에다 덮고~ 나중엔 배까지 덮고 앉았다. 우리끼리 떠들고 서로 쳐다보며 웃음을 참아가며 우리의 행동에 서로 재밌어 하고 좋아서 ㅎ ㅎ ㅎ 포도주로 건배를 하고 술을 못 먹는 내가 홀짝홀짝 하고 있었다.

(잠이 잘 온다고 먹으라고 해서)

   방이 커서 저쪽의 자매들과 이쪽의 자매들이 서로 딴 나라가 되고, 눈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앉았으니, 통합이 되질 않은 것도 방의 구조 때문이었다.(핑개) 아니 정말이다. 저쪽에서 하는 말이 들리지가 않았다. 그리고 박동주(야고보)님의 “(남존여비)남자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존재 한다.”가 설명되었다. 나는 우리 지휘선생님의 남편께서 이미 알려준 버전이라 따라 웃었다. 우리는 한 참을 그렇게 즐겁게 웃고, 새로운 버전으로 정보를 알려주며 신자들의 수준을 넘지 않게 어떤 이들의 노래를 듣고, 박수를 치고 좋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서로 다짐하며 각자 방으로 향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늘 상 잠자리가 바뀌면 여행길에서 고생하는 부분이 또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방 식구들은 자는데, 나만 꼬박 이~밤을~ 눈감았다 떴다. 술이 잠을 오게 한다더니 포두주가 소용이 없었다. (이제 믿지 않을 것임)

   신부님도 피곤하셨을 것이다. 오늘 계속 차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에서 약간의 게임을 했다. 그중에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갈까 말까 에라 가자~~쥴리안나님의 지도로 흔들리는 차 안에서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아주 신선했고, 조용하기만 하던 쥴리안나의 모습도 새로웠다. 오늘의 준비위원님들은 앞자리에서 선도위원~~또는 맨 뒤에서 먹을 것을 조달했다. 가운데 앉은 우리는 늘 주는 대로 먹고 마냥 편한 자리에 나는 앉았다. 가을의 황금벌판도 서울에서 온 우리를 반기는 사이에 온천탕이 있는 ”노고단 호텔“이었다.

 

댓글 1

  • 2010년 11월 3일 오후 2:01

    여기에 올라온 글은 많이 흐트러 진 글입니다. 자료실에 파일을 열어서 보시면 정상입니다.다음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