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총동문회 회보에 실어던 까미노 소개의 제 글입니다. 회보 편집 과정에서 일부 누락된 부분을 원상 보완하였고 또 약간의 첨삭을 하였습니다.
까미노에 관심 있으신 동기분들을 위해 여기에 다시 옮겨 올리니 양해를 바라며, 순례를 계획하신 분들에게는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순례 중 썼던 일기를 같이 나눠볼까 생각했지만 사진을 올리는 기술이 부족하여 포기했습니다.
스페인 북부 순례길 “까미노”소개
윤 양현 아우구스티노 (교리 48)
2009년 4월 12일의 부활대축일을 보내고 4월 18일 부부가 함께 집을 나서 4월 24일부터 6월 3일까지 40일 동안 스페인 북부의 “까미노(Camino)"라는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다녀온 후 여러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 동문님들 중에서도 관심을 가지신 분이 계실 것 같고 관련된 제 경험이나 지식을 이런 분들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기초적인 몇가지를 적어 보겠습니다.
1. “카미노”라는 표현이나 “산티아고”라는 표현을 들어 보셨을 터인데 이건 무얼 의미할까요?
우선 “까미노(Camino)"는 스페인어로 길이란 뜻입니다. 영어의 Way 쯤 되지요.
어디에나 길이 있지만, ‘까미노 데 산띠아고(Camino de Santiago)'라는 순례길이 11세기부터 유럽인들에게는 워낙 유명한 순례길이었기에 “까미노”는 이 순례길의 대명사가 되었답니다. 여기서의 “산띠아고”는 스페인 북서부 대서양변에 위치해 있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 postela)라는 도시의 약칭입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가는 길’이란 의미의 순례길입니다.
그럼 왜 많은 사람들이 오랫적부터 이곳 ‘산띠아고’로 순례를 나섰을까요? '산띠아고’라는 곳에 무엇이 있어설까요?
‘산띠아고’는 예수님의 12사도중 한 분인 야고보 사도, 즉 Sancti Iacobi(聖 야고보)가 이 지방의 말로 변하는 과정에서 Santiago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는데, 스페인에서 ‘산띠아고’는 ‘성 야고보’의 호칭입니다. 이 도시에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고 그 무덤 위에 산띠아고 대성당이 서 있습니다. 도시의 이름도 야고보 성인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 산띠아고가 되었고요. 이 도시, 좀더 좁히면 이 대성당이 순례의 목적지입니다.
야고보 성인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그 당시의 세상 서쪽 끝이었던 이곳으로 오셔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순교(사도 12,2)합니다. 순교후 시신을 수습한 제자들이 작은 배에 그 시신을 실어 지중해 바다에 띄었는데 돛도 노도 없었던 그 배가 성령의 인도로 사도의 생전 전교지였던 이곳 근처 해변으로 흘러 들었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묻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묻힘도 세월에 묻혀버렸습니다.
스페인은 8세기초부터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게 되면서 북부지방 일부만 가톨릭으로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국왕과 교회는 이슬람으로부터 국토를 회복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이슬람의 영향력이 약한 북부 지방에 위치한 산티아고의 성지를 개발하여 신앙심의 고취와 함께 경제 부흥을 꾀하였다고 합니다. 뒤이어 십자군 전쟁이후 예루살렘 성지 순례길이 막히면서 유럽인들에게는 이곳이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3대 성지 순례지가 되었다네요.
특히 11~15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이 길을 걸어 산띠아고로의 순례 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16세기의 종교개혁과 이후의 스페인 내전, 세계대전 등으로 이 길은 쇠락하였다가,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산띠아고 방문과 1987년 유럽연합이 이 길을 유럽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다시 많은 유럽인들이 몰려 들기 시작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 길을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등재하였습니다.
2. ‘산띠아고로 가는 길’은 꽤 다양합니다.
유럽인들을 보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자신의 집에서부터 걸어서 산띠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내에서도 남부 지방으로부터 걸어서 오는 코스들도 몇 개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길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El Camino Frances’, 즉 ‘프랑스 길’입니다. 유럽 각지에서 출발해 오는 사람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피레네 산맥 아래 위치한 프랑스의 작은 국경도시 ‘생 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라는 곳으로 운집하는데 이곳이 ‘프랑스 길’의 통상의 출발점입니다.
이곳은 도시 이름을 보아 짐작하시겠지만 중세 시대에는 산너머에 있던 스페인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던 성채의 군사 도시였답니다. 여기서 순례의 목적지인 산띠아고까지의 거리를 통상 800Km라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보통 이곳 생 장에서 1박을 하고 이틑날 새벽 일찍 길을 나서 피레네 산맥을 넘게 됩니다. 스페인의 첫 숙박지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는 약 27Km의 피레네를 넘는 산길입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 때문에 8시간 이상이 소요됩니다. 제가 피레네를 걸어 넘었던 4월 25일은 안개와 가랑비 속을 걸었기에 아름답다는 풍경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고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눈이 수북히 쌓인 길을 꽤 오랫동안 걸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길에 익숙치 않은 첫날부터 피레네를 넘기는 고역이라서 첫 숙박지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산띠아고까지 가는 길은 좋은 흙길이 있는가 하면 진흙탕길, 자갈길, 바위길, 산길 등 험한 길 등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또 피레네를 넘었지만 해발 1,500m의 고지 등 1,000m을 넘는 산을 3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우리네 산에서 보는 깔딱 고개가 없이 긴 시간을 완만하게 오르는 길입니다.
800Km를 걸으면서 다양한 환경과 기후, 문화 그리고 사람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원래 이 길이 순례자의 길이었기에 어느 동네를 지나건 반드시 성당 앞을 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에게는 큰 행복이지요.
하루에 얼마를 걸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의향입니다. 바쁘면 빨리, 아니면 천천히 즐기면서 걸으면 되니까요. 이 길에서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요. 일상의 습관을 버리겠다고 걷는 길이니까요. 제가 지금 다시 걷는다면 좀 더 천천히 즐기면서 기웃거리고 빈둥거리면서 걷고 싶네요.
혹시 걷는데는 자신이 없는 분이라면 어떤 구간은 걷고 또 어떤 구간은 버스를 이용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또는 싼띠아고 100내지 150Km 전부터 1주일이나 열흘 정도를 천천히 걸어서 싼띠아고에 입성하셔도 좋고요.
3. 잠자리와 먹거리도 중요하지요.
이 길이 오랜 세월 동안 순례길이었기에 순례자를 위한 숙소가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순례자용 숙소를 '알베르게(Albergue)'라 합니다.
숙소는 군데군데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에 따라 걷고 적당한 곳의 알베르게에 들면 됩니다. 알베르게의 운영자가 지역 교회, 수도회, 지자체, 개인 등 다양하여 숙소비도 무료(개인의 의향에 맡겨진 기부제)로부터 3유로, 5유로, 7유로 등 각각 다르며 설비 등도 천차만별입니다. 통상의 도미토리 형태로 침대만 제공(침낭은 개인이 필히 지참) 하며, 한 방에 수십명이 묵기도 하고 조용한 곳은 2명만 묵기도 합니다. 샤워 시설이나 세탁 시설은 만족할 만 합니다.
참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에 묵기 위해서는 크레덴셜(Credencial)이라는 순례자 증명서가 필요한데, 출발지의 ‘순례자 사무실’에 가면 만들어 줍니다. 일종의 순례자용 여권이지요.
알베르게가 실증이 나면 ‘오스뗄(Hostel)' 등 저렴한 호텔을 이용해도 좋을 겁니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성지 순례라는 취지도 있었지만 알베르게에 맛을 드려 까미노중에는 다른 숙소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먹거리는 어딜가나 주변 식당에서 저렴한 가격의 ‘순례자 메뉴’를 팝니다. 보통 한끼 9~11유로 정도 합니다.
그리고 알베르게에는 부엌이 있는 곳이 많아 수퍼에서 끼리끼리 장을 보아 만들어 먹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사먹는 것보다 한결 좋았습니다.
4. 여려 사람이 함께 가는 것이 좋은가, 혼자서 가도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답은 모두 “OK, 즉 모두 좋습니다”입니다.
여럿이 가도 걷는 동안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혼자서 걷게 됩니다. 또 같이 간 일행은 물론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순례를 한다는 동료 의식이 강해서 금새 가까워집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배려가 큽니다. 이 순례길은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안심해도 좋다는 느낌이었습니다.
5. 비용 문젠데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순례길에서 호사를 바랄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저는 비행기표를 제외하고 까미노 순례 40일 동안 약 1,000유로(부부 합해 약 2,000유로)를 썼습니다. 대개 이 정도의 돈이면 먹고 마시고 자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충분히 먹고 마셨건든요.
*참고 : 까미노 40일을 전후한 프랑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순례를 포함한 65일 동안에 저희는 부부가 4,000유로를 썼습니다. 당시 환율로 1인당 340만원 정도 소요된 셈이지요.
6. 순례길을 걸었던 제 느낌이요?
글쎄, 짧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질않네요. 그러나 무슨 대단한 영성이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삶이 무언가를 너무 치덕치덕 바르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적 있으시지요? 물질에 대한 과욕이나 과시욕은 물론이요, 체면과 가식 등 우리를 짓누르는 정신적인 무거운 짐을 포함해서.
삶에 필요한 것은 정말 단순한 것 조금이면 충분하다는 걸 강하게 느꼈습니다. 먹고 자고 쉬고 걷고, 좁아도 편한 잠자리와 적당한 먹거리, 따듯한 옷, 주위에 대한 배려와 일상에 대한 감사, 단순한 목표 등이요.
걷는 동안은 단순해지니까 주님께 접근하기도 쉬웠었습니다.
추신 : 까미노 순례를 계획하시는 분 가운데서 혹시나 제 경험이나 의견이 필요하신 분 계시면 항상 연락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