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가
박경철 (의사)
대개 의사라는 직업을 삼고 있는 사람들은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물에 빠졌을 때 물가에 선 사람이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만나는 환자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가 가끔 있다. 그를 만날 때 바로 그랬다. 그는 올해 35세로 안동 시내로부터 30분 정도 걸리는 인근 면 지역에 살고 있다.
그가 처음 진료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그의 걸음음 보고 선천성 뇌성마비라고 생각했다. 보통 어릴 때 뇌를 다치면 그로 인해 사지나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뇌성마비라고 하는데, 뇌성마비에는 여섯 종류가 있다. 그러나 대개는 크게 강직형과 실조형 이 두 가지로 나눈다. 강직형은 팔다리가 굳어서 비틀어지고 목이나 입모양, 얼굴 표정도 일그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실조형은 강직형과는 반대로 축 늘어져서 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는 이들이 이에 해당된다. 보통 뇌성마비는 강직형보다는 실조형이 큰 문제다. 강직형은 예후가 좋아서 일찍 발견하고 조기에 치료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많이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뇌성마비 환자들은 대개가 강직형이다. 이들은 비록 몸이 많이 힘들기는 하지만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조형은 방에만 누워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지 실제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강직형 뇌성마비였다. 그의 몸은 목에서부터 심하게 틀어져 있었고 골반의 균형이 맞지 않아 걸음이 바르지 못했다. 두 팔 역시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초점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었고, 얼굴 표정 역시 그야말로 실없이 웃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건넨 첫 인사는 “어디가 불편하세요?”가 아닌 “혼자 오셨어요?”였다. 뇌성마비 환자의 경우에는 보호자가 따라와서 병력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현재 증상을 대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오진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고 때문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의자에 앉기까지 나는 자못 걱정스런 마음으로그를 쳐다보았다. 더구나 그는 자리에 앉아서 병세는 이야기하지 않고 뇌성마비 환자 특유의 웃음을 지으면서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난감한 시간이 흐른 다음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뇌성마비 아닙니다.” 그가 내속을 빤히 들여다 본 것 같아 잠시 얼굴이 빨개졌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요?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춤을 주섬주섬 풀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선생님, 지송합니다. 이거 몸이 올찮아서 허리띠 하나 푸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럴 때는 도와주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그가 스스로 허리춤을 다 풀도록 기다렸다. 그는 엉덩이에 커다란 욕창을 앓고 있었다. 양쪽 엉덩이 사이에 자리잡은 욕창은 자그마한 거즈와 반창고로 덮여 있었고 그것을 풀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엉덩이에는 지금 자리잡은 욕창 외에도 이미 수도 없는 욕창 수술의 흔적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긴 기간을 누워 있었을지 또는 그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고통을 받았들지가 그 상처에 훈장처럼 아로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는 내 물음의 뜻을 알아 듣고 어눌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한 1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때 목을 다쳤어요. 슈퍼맨 아시죠? 그 사람과 같은 해에 똑같은 상태로 누워 있었어요.” 내 귀에 내 목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경추 골절을 당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일어선 거예요?” 어느새 나는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어 갔다. “예, 중환자실에서 2년을 누워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들이 그러시더군요. 나중에 잘하면 손가락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고. 그러면 세상이 좋아져서 호킹 박사처럼 기계로 말도 할 수 있다고, 그러니 절망하지 말라고요. 세상에 그게 희망이라니, 원….”
하지만 그는 2년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기적적으로 일어섰다고 했다. 물론 그동안 수없이 폐렴과 욕창에 시달리기도 했고, 병문안을 온 형을 보고 죽여달라는 부탁도 수없이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가느다란 전기 같은 감각이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로부터 다시 1년만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결국 그는 3년간의 긴 투병끝에 스스로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금 그는 안동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무농약으로 검은깨를 재배하고 있다. 다리는 아직 사마귀의 그것처럼 허우적거리고, 두 팔은 무엇을 집으려면 마치 물동이를 안는 것처럼 큰 원을 그려야 하지만 그래도 그는 몸소 농사일을 하고, 혼자서 차를 운전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날 뇌성마비라고 착각을 했을 정도로 입은 언제나 귀에 걸려있고 병원에 들어설 때는 온 병원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를 내서 인사를 한다.
그런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예전에는 몰랐어요. 내 손이 무엇인가를 만질 수 있고, 그걸 느낀다는 것, 내 두 다리가 내 몸을 지탱하고 움직인다는 것, 내 손으로 밥을 짓고 내 몸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애절하고 소중한 일인 줄을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그때 자리에서 누워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들고 냄새나는 대소변을 받아낼 때 그 수치스러움을 생각하면 요즘 한 달에 1밀리미터만큼씩이라도 팔 다리에 감각이 살아나는 이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는 그래서 늘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배꼽 아래는 여전히 감각이 둔하다. 그래서 자칫 실수하면 어느새 또 욕창이 생기곤 하지만 여전히 욕창이 생긴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병원에 올 때쯤이면 그의 엉덩이에는 벌써 시퍼런 고름이 잡히고 사방 5센티미터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곤 하다. “제가 게을러서 그래요. 매일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잘 살펴야 하는데, 솔직히 제 몸이라도 제가 보는 게 별로 안 이뻐요. 그래서 어째 좀 그걸 게을리하면 이렇게…” 그는 내가 욕창관리를 소홀히 한다고 타박을 하면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늘 이렇게 변명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진료를 마치고 문을 나설 때면, 그를 통해 내 몸을 비춰보곤 한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이 이쁘지 않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그의 실루엣에 겹쳐본 내 모습이 이쁘지 않다. 나는 그가 하루에 웃는 저 웃음의 얼마만큼이나 웃고 사는지, 나는 그에 비해 몇 퍼센트 정도나 사람의 몸을 귀하고 살갑게 여기는지, 나는 그가 하는 감사에 비해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사는지, 그 어느 것도 내가 그보다 나은 게 없어 보인다.
정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