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빛

2006. 8. 4. 오후 4: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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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변모 (마르코9장2-10절)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 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

그때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오늘 복음에서 세 명의 제자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신 것과 새 하얗게 빛을 내며 변모하신 모습을 은밀하게 세 제자와 두 예언자에게만 보여주시는 깊은 뜻이 무엇인지 ? 의문에 의문을 낳는 그 순간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너희는 들으라 하는 하느님 계시의 말씀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 많은 의혹을 남기게 합니다

의문을 하나하나 풀어보자면 높은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곳  모세가 십계 판을 받은 곳  기도하는 장소 또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볼 수없는 높은 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모습을 세 제자와 예언자에게만 보이시며 곧 닥쳐올 환난을 예고하며 깨어 있으라고 준비시키려는 변모였는데 베드로는 이러한 깊은 뜻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성격대로 황홀한 빛 속에 머물려는 호사스러운 욕망에 빠져 초막 셋 을 지어 그 빚 속에 머물기를 갈망하며 예수님께 간청 합니다 

수제자께서 어처구니없는 동문서답을 하니 예수님속이 어떠했을 까요 ? 

마지막 의문점은 색깔론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색깔 중에 백 색이였을까 ?

초대 교회 때 백색만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

12 세기부터 교황 인노첸시오 3세 (1198-1216)때 각 시기에 따라 특수한 색상을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는데 각 민족문화와 전통에 맞는 전례 색상을 결정하여 교황청의 인준을 받아 사용 할 수 있다

검은색은 슬픔과 죽음을 상징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백색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상복으로 사용하는 의미가 그것이다

2005년 4월초 어느 날 밤 꿈에 어떤 할머니가 하연 소복을 입고 텅 빈방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엉 겹 결에 할머니 어쩐 일로 여기까지라는 송구스러운 말씀을 드리고 큰절을 하고 앉으니 매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는데 잠을 깼습니다

그 이후 꿈에 의미를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에 큰 변화가 없어 잊어버렸는데 두서너 달 뒤에 리디아가 발음이 좀 이상해졌는데 그러다 말겠지 하고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 쳤습니다 

지금 중환자실에서 힘겨워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련한 놈으로 가슴 치며 후해합니다 

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미물에게까지 예수님께서는 미래의 환난을 미리 예시해 주셨는데 이 미련한 놈은 깨우치지를 못했습니다

서양문화도 그러했는지는?

예수님 부활사건 이후 백색이 거룩한 변모와 부활한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과 결백 기쁨과 빛을 상징하는 좋은 색깔로 변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 정리 해 보겠습니다

장차 교회를 걸머져야할 세 제자를 뽑아 한적한 산에 올라가 앞으로 교회가 나아가야할 험난한 여정을 깨우쳐 주기위해 당신께서 하얗게 변모하는 모습으로 미리 보여 주시며 앞으로 닥쳐올 시련과 아픔 절망과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성령으로 용기와 지혜를 주시여 실의에 빠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싫어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는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느님의 계시와 함께 예언자를 증거자로 세우시며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까닭은 영광 앞에 닥쳐올 수난과 죽음을 상기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여주셨는데  베드로는 황홀한 착각 속에 빠져 엉뚱한 이야기로 횡설수설 합니다

영예스러운 순간의 변모 이전에 수많은 인고의 쓴 잔을 마셔야만 하는 고통은 보지 않고 월계관만 보고 나도 그 속에 안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베드로 뿐 아니라  인간모두의 본능적 욕구가 아닌가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며 힘겹게 쌓아온 공덕을 허황된 유혹에 넘어가 값싸게 팔아넘기지 않도록 절제하고 다짐하는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습니다 

평범한 생활 중에 어떤 꿈. 환시. 을 보았을 때는 각별히 조심하고 철저히 대처 해 나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다져나가야 하겠습니다   아맨





댓글 5

  • 2006년 8월 4일 오후 9:40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통해 묵상하신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는 리디아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 2006년 8월 4일 오후 11:23

    저는 요한바오로2세교황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저와 합체가 된 후 제가 눈부신 유리관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저를 시기하고 해하려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덕분에 저는 기도를 많이하게되었답니다...

  • 2006년 8월 5일 오전 11:42

    리디아 자매님께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군요. 집에서 두 분 모두 힘드신 것보다 훨씬 나은 결정인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인고의 나날을 잘 통과하시고 좋은 쪽으로 승화시키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2006년 8월 6일 오전 9:29

    형제님 힘 드시죠. 형제님의 삶을 내 맡기는 은총으로 주님께서 리디아를 지켜주실거에요. 리디아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 2006년 8월 7일 오후 8:56

    저희가 어찌 1/100 이라도 알겠습니까마는 희망을 절대 버리지 마세요....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