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의 한 자매가 행동이나 말이나 성격 등 무슨 일에 있어서나 제게 ‘아주 못마땅해서’ 저를 불쾌하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수녀도 하느님께 커다란 즐거움이 될 거룩한 수녀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연히 느끼게 되는 반감을 억제하기 위하여 ‘애덕이란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실에까지도 나타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할 만한 일을 그 자매를 위하여 하기로 힘썼습니다. 그 자매를 만날 적마다 그 자매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며, 그 자매의 모든 덕과 공을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그것을 매우 기뻐하시리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작품이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예술가가 없는 것과 같이 영혼의 예술가이신 하느님께서도 사람들이 밖에 머물지 않고 당신 처소로 가리신 성전 속에까지 들어가서 그 아름다움을 감탄할 때에, 기쁘시지 않을 리가 없을 터이니까요. 저는 싸움거리를 그렇게 많이 장만하여 주는 그 자매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무엇이든지 도와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에게 불쾌한 대접을 하도록 유혹을 당할 때면, 극히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으로 만족해 하고, 말머리를 돌리려고 노력 하였습니다. ‘준주성범’에도 “논쟁을 일삼는 것보다도 각각 생각하는 대로 버려 두는 것이 더 낫다.” 는 말씀이 있으니까요 (준주성범 3편 44,1).
그리고 때때로 쉬는 시간이 아니라도 (일하는 시간 말입니다), 이 자매와 함께 해야 될 일을 할 때 제 마음속에 싸움이 너무 심해지면, 저는 도망병처럼 달아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자매는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고 제 행동의 동기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성격을 제가 좋아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이런 말까지 하였습니다. “아기예수 데레사 자매, 자매가 어째서 나한테 그렇게도 몹시 마음이 끌리는지 말해 주겠어요? 자매가 나를 볼 때마다 웃지 않는 때가 없쟎아요?” 아! 제 마음을 끄는 것은 그 자매의 영혼 안에 숨어 계신 예수님… 가장 쓴 것을 달게 해주시는 (준주성범 3편 5,3) 예수님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를 보면 좋아서 웃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영혼의 눈으로 보아서라는 것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공사가의 마리아 수녀에게 쓴 편지' 중에서, 성녀 소화데레사 자서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