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7,11-19
<이 세상에서 소외- 배제된 사람들을, 하느님 은총의 공동체로 회복시키시다>
나병환자처럼 세상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었거나, 인간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큰 자비를 보이심은
주님께서 큰 자비를 보이심은
이들을 이 세상 '인간 공동체'의 정상적인 질서로 회복시키시는 의미가 있지만(*사제에게 몸을 보여라)
그보다는 새 세상 '하느님 공동체'의 은총의 질서로 회복시키시는 의미가 핵심이다(*하느님께 영광드리라).
그보다는 새 세상 '하느님 공동체'의 은총의 질서로 회복시키시는 의미가 핵심이다(*하느님께 영광드리라).
그런데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의 질서로 돌아가는데 급하여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느님 은총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임을 잊는 경우가 많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느님 은총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임을 잊는 경우가 많다.
인간을 향한 규범(지혜/용기/절제/정의-인/의/예/지-자유/평등/박애 등등)에 급하여,
하느님을 향한 규범(믿음-사랑-희망)을 잊는 데 대해서
주님께서 깊이 탄식하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느님을 향한 규범(믿음-사랑-희망)을 잊는 데 대해서
주님께서 깊이 탄식하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늘날 같으면
이 세상 모순구조로 소외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옛 세상의 새 질서로 회복시키는데 급하여
새 세상 하느님나라 평화로 오는, 은총의 새 질서로 돌려보냄을 잊는 데 대해서
주님의 깊은 탄식이 계시지 않을까 싶다. (써니)
이 세상 모순구조로 소외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옛 세상의 새 질서로 회복시키는데 급하여
새 세상 하느님나라 평화로 오는, 은총의 새 질서로 돌려보냄을 잊는 데 대해서
주님의 깊은 탄식이 계시지 않을까 싶다.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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