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 ... 윤경재

2007. 6. 14. 오후 5: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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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 ... 윤경재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0-26)



  우리 몸에 생기는 상처는 사고나 상해로 인해 피부가 찢어지고 조직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 갈라진 사이로 생긴 이물질과 독성물질을 깨끗하게 제거해주면 우리 몸 안의 자연치유력이 작용하여 그 갈라진 틈새를 메우고 조직을 되살려 낫게 된답니다. 마음에 생긴 상처도 이와 같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틈새를 메우고 있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해야만 새살이 돋고 상처가 나을 수 있답니다.


  몸에 난 상처를 방치하면 계속 오염된 이물질이 작용하여 곪아 터지듯이 마음의 상처도 이와 같이 곪아 터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곪은 독소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흔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주고받는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상처는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점점 깊어지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이해해주겠지 하고 넘어가지만, 상대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기회에 나도 그 만큼 갚아 주리라하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관계를 차단하는 방법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보면 이 말이 사실이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증오가 담기지 않은 무심한 말 한마디라도 우리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는 주로 가정환경, 학교 성적이나, 외모를 가지고 놀림을 주고 또 받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보다 예민해져서 오만가지 것들이 다 상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만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존심을 건드리면 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상태에서 상처를 준 상대방을 용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합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그 증오의 독소가 우리 안에서 생겨나 먼저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용서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우리에게 돌아오도록 만드셨습니다.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는 일, 자신을 성폭행한 범인을 용서하는 일 만큼 어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께 이렇게 항변합니다. 왜 상처를 입은 사람이 먼저 용서해야 합니까?


  우리 생각에는 지극히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우리가 남을 용서할 때 얻는 기쁨이 우리 자신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웃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용서는 사랑을 낳는 사랑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과거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자신의 현재를 어루만져주는 일이며 밝은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일은 하느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든 또 그 사건으로 어떤 영향을 받던 간에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맡겨진 용서를 하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 자신이 하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대를 용서하기 어려워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오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용서했으니 상대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 이것마저도 핑게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님은 일깨워 주십니다.


  주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용서의식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용서해 주는 것에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먼저 나서서 화해를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원한을 살 일을 하였다면 제단에 예물을 올리기 전에 용서를 먼저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법정에서라도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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