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펌글)

2006. 4. 21. 오후 3:22:19

글자
새옹지마(塞翁之馬)
 살다보면  | 2006·04·21 14:00 | HIT : 416 | VOTE : 21 |
그저 내 고향팀이라는 이유 하나로 대전시티즌을 열렬히 사랑하는 40대 배불뚝이가 어느날 문득,
보는 축구로는 만족할 수 없다며 축구화 한켤래 달랑 사들고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선천적으로 몸치에 개발인지라
이리저리 놀림감이 되고, 막내동생같은 회원들에게 늘 잔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축구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만들어지는데서 느끼는 일체감
목표를 달성했을 때, 즉 골을 넣었을 때 오는 그 환희와 성취감
진심어린 하이파이브와 땀에 젖은 포옹에서 물씬 풍기는 사나이들의 짙은 우정
승리에 함께 환호하고, 패배에 함께 좌절하면서 느끼는 뜨거운 동지애
서로에 대한 위로와 격려에서 맛보는 가슴 뭉클한 사랑

제가 비록 축구는 못하지만 바로 이러한 매력들이
그 무엇보다도 강한 흡인력으로 저를 축구장으로 이끄는 듯 합니다

그렇게 멋모르고 까불고 다니다가 얼마전 부상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타박상이려니, 하루 자고나면 괜찮아지려니 생각했는데 결국 병원을 찾게되었습니다
X-Ray, MRI 촬영 결과는 무릎 내측인대 파열. 진단 6주가 나오더군요.

속상하데요.
이제서야 겨우 30분 경기를 소화할 정도 체력을 만들어 놨는데,
이제는 내가 생각한 곳으로 패스가 가는데,
이제 쬐금 위치선정이 무엇인지 알것 같은데 부상이라니....너무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 아프더군요

사무실 출근도 못하고서 그렇게 며칠을 집에 누워서만 보내는데
문득 이동국 선수가 생각나더군요...

........

동국아!
그저 취미로 축구를 즐기는 나도 부상을 당하니까 이렇게 속이 상한데
축구가 전부인 너에게 부상이란 그 얼마나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겠니...
아니 슬픈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지는 그런 고통일거야

그동안 내 팀의 선수가 아니기에 너에게 관심만 있었지 그다지 애정은 없었다만
이렇게 내가 다치고서 너를 생각해보니,
다시 한번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할 너의 고통을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내 가슴마져 시리도록 아파오는구나

하지만 동국아,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했다
절대로 주저앉아서도 포기해서도 안 돼.

지금 너의 부상이 더할수 없이 괴롭고 고통스럽겠지만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항상 행복할수도 없고, 앞날을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잖니
어찌보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더 나은 기회를 위한, 더욱더 성숙한 이동국을 만드려는 그런 시련일지도 모를거야

나에게도 그련 어려움이 꼭 한번 있었어. 내가 딱 지금의 너정도 나이 때였지
첫 발령을 받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인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같은 공직생활을 하시던 든든했던 아버지.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더구나

함께 동승하고 있던 어머니는 전치 16주로 병원침대에 누워 눈만 깜박이실 정도였고
어린 동생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고....
그때는 정말 주저앉아 모든것을 포기하고만 싶은 심정이였지

어떻게 장례를 모시고 어떻게 어머니 병간호를 했고 어떻게 동생들을 다독거렸는지
지금에 와서는 이상하리만치 생각이 잘 안나. 너무너무 힘들었었지.

'내가 살면서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거다
이제 하루하루가 더 나아지면 나아졌지 나빠질수는 없을거다' 라는 마음으로
행여나 내가 흔들리는 모습 보이면 어머니랑 동생들까지 좌절할까봐
하루에도 몇번씩 독하게 마음 다잡으면서 버텨냈었지.

돌이켜 보면 그때의 그 시련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거 같구나
그렇게 이를 악물고 이겨내니까, 가족 모두가 평온을 되찾았고
또 나도 이렇게 평범한 소시민으로 축구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더라구.

거기다가 이제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해도 별로 겁도 안 나. 크크크

이번에 나 다리 기브스하니까 사람들이 그러더라
나이값도 못하고 거기다가 개발이 무슨 축구는 하냐고 그러더만
같이 골프나 치러 다니자길레 내가 딱 한마디 해줬어
나 축구 잘할 수 있을 때까지 한번 해 볼거라고 ^^;;

동국아, 절대로 포기하면 안돼.
나도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데 재능있고 젊은 네가 좌절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잖니

동국아, 절대로 주저앉으면 안돼.
지금의 이 시련을 이겨내면 반드시 너에게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동국아, 희망을 잃어서는 안돼.
앞으로 너에게는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거야

동국아. 돌아오면 꼭 한번 연락하려므나
비록 내 팀의 선수는 아니지만, 무릎 다친데 좋다는 도가니탕 한그릇 먹이고 싶다
( 계산이야, 내가 한참 큰형이니까 당연히 내가 사야지 ^^;; )

그렇게 도가니탕 같이 먹으면서 우리 함께 재활하는 선수(?)의 고통을 나눠보도록 하자
행복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잖니. 알았지??

210.103.66.66
꿈200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는 40대로서 님의 글에서 인생의 진한 향취가 물씬 배어 나와
많은 공감을 합니다.
이젠 다치지 마시고 즐기는 축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국 선수! 힘 내시게...
(일요축구 2년차에 아직까지 필드골을 성공 못시킨 왕개발 동년배 드림)

[ 58.224.55.240 ]  06·04·21 14:50  

lalas 저도 개발에 쓸데없이 활동량을 보여준다고 (히딩크가 사람 여럿버렸다..;;) 10분동안 이리저리 공간을 뛰어다니다가 금새 지쳐버리는 체력의 소유자이지만...필드에서 뛰는것 정말 매력적입니다...7-8번을 개발질 해도 단한번 우리편에게 좋은지점으로 내패스가 연결될떄의 희열...ㅎㅎ 하물며 골은 오죽할까요...눈으로만 즐기시는 분들 많으실텐데 직접 접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또다른 시야도 생기고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이해심도 생기고..좋습니다..훗

댓글 1

  • 2006년 4월 21일 오후 3:26

    나 축구 잘할 수 있을 때까지 한번 해 볼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