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일지 66

2006. 4. 21. 오전 11:59:13

글자
요한 복음 21장 1-14절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1.고기 잡기      김훈일 신부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베드로를 포함하여 일곱 명의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날도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일어섭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3년 전 고기 잡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는 예수님께 끌려 그물을
팽개치고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제 다시 그물을 손에 잡겠다는 겁니다. 그러자 나머지 여섯 명도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면서 따라 나섰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그들은 그저 그런 과거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물을
칩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느라 실력이 없어진 것인지 밤새 노력했지만 도무지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고 그분의 말씀대로 그물을 치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그제야 주님을 알아 뵙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주님을 떠나서
옛 삶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일하는 사람에게는 풍성한 수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삶입니다.

(생활성서-소금항아리에서)

 

2.축구 이야기

 

 

걸음이 느린 아이, 박지성

 
2003년 초, 박지성이 네덜란드에 진출하고 초기의 일이다. 3월 하순,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이적 직후 한동안 오른쪽 무릎 통증을 호소하던 박지성이 하루는 아예 훈련장에 나오지 않았다. 훈련시간이 끝난 후 클럽 하우스에서 걸어 나오는 박지성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퍼?” 박지성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무릎 통증이 심해져서요. 아무래도 수술을 받아야 하려나 봐요.” 이튿날 병원 주치의에게 만나서 물어보니 박지성이 한일월드컵을 전후로 무릎 연골이 혹사 당해 연골 일부분이 찢어져 뼈 사이로 돌출해 버렸다는 것이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과의 면담 후 며칠 뒤 수술을 결정했다. 어쩌면 장기간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큰 수술이었지만,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모두 멀리 내다본다는 안목에서 수술을 마음먹었다.

수술을 받는 날 아침, 오전 일찍 수술실에 들어갔던 박지성이 해가 중천에 떠서야 목발을 짚고 병원을 걸어 나왔다. 수술 부위의 심한 통증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박지성이 너무 안스러웠다. 박지성은 나를 비롯한 몇몇 취재진을 보고는 이내 얼굴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조그만 병 속에 든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이게 잘라낸 연골이래요. 의사 선생님이 제게 주시더라구요. 신기하죠?” 조그만 알코올 병 속에는 수술로 잘라낸 새끼 손톱 만한 하얀색 무릎 연골이 들어 있었다. 이후 약간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 시즌은 이제 힘들 듯해요. 잘 준비해서 다음 시즌엔 잘 해야죠.” 얼굴이야 애써 괜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갓 스물을 넘긴 여린 청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당시 박지성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박지성은 2003년 2월9일 발바이크전에서 교체 출전하면서 데뷔를 했지만 이후 수술 때까지 2달 동안 고작 4경기에 출전했다. 같은 시기 임대로 에인트호벤에 동반 입단한 이영표는 매 경기 빠짐없이 출전하면서 주전자리를 꿰찬 것은 물론 완전 이적 논의가 빠르게 진행 되고 있었고, 박지성보다 앞서 네덜란드 무대를 밟은 페예노르트의 송종국 역시 일본의 간판 오노 신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팀의 간판 용병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당연히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박지성이 더욱 힘들었던 이유는 이렇게 무릎이 아파 힘들어 하는 두 달여 간 네덜란드 언론의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은 박지성을 영입한 히딩크 감독에게까지 화살을 날리며 박지성의 자질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워낙 조용하면서 무던한 성격의 박지성인지라 이런 보도에 대해 아파하는 모습을 엿보인 적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그때마다 어린 박지성이 너무 안스러웠다.

하지만 박지성은 불과 한달 반 만에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수술 당시 “더 이상 시즌을 뛸수 없을 것이다”는 주위의 예측을 뒤집기라도 하듯 빠르게 회복한 결과 5월 말에는 전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호전됐고, 결국 그 시즌 에인트호벤의 우승에 동참했다. 이후 박지성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축구팬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요즘 영국서 뛰고 있는 박지성을 보면 네덜란드 진출했을 당시가 생각난다. 솔직히 네덜란드 진출했을 때보단 한 서너배 쯤은 상황이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그때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영국에 동반 진출한 이영표는 이미 토튼햄의 확고한 주전으로 뛰고 있는 반면 박지성은 아직 주전과 교체 멤버 사이를 오가고 있다. 물론 소속팀의 선수 구성 면에서 당연히 박지성에게 선발 출전의 기회가 불리하고, 박지성이 거둔 출전시간 대비 공격포인트 수는 호평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박지성이 라이언 긱스 등 기존 멤버들과의 주전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역시 잉글랜드에서도 박지성은 네덜란드 때와 마찬가지로 이영표가 자리를 잡는 속도에 비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박지성을 지난 8년간 봐 왔다. 98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명지대 김희태 감독의 권유로 허정무 당시 올림픽대표팀 감독에게 첫 선을 뵈던 날, 박지성은 튀는 것 없는, 그저 열심히 뛰는 평범한 어린 선수였다. 어린 나이에 일본 프로무대로 건너가서도, 히딩크 감독 부임 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서도 박지성의 처음은 항상 그렇게 느려 보였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비슷한 느낌이다. 박지성의 발은 결코 빠른 편이 아니다. 그저 90분 내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부지런히 공수 플레이에 힘을 보태고 화려한 개인 돌파 보다는 팀 워크를 위한 패스를 위주로 한다. 때문에 항상 주변의 스타플레이어들의 튀는 발 재간이나 화려한 골 장면에 묻혀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그의 진가를 드러낸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교토 퍼플상가에서도, 2002 월드컵대표팀에서도, 에인트호벤에서도 그랬다. 박지성의 걸음은 항상 처음이 느려 보이지만, 꾸준하게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결국 그를 남들이 가보지 못한 정상으로 이끌곤 했다. 난 확실히 알고 있다. 박지성은 이제 막 맨유에서의 ‘느린 걸음’을 시작했을 뿐이다. (펌글)

 

 

연일 매스컴에서는 월드컵에 대한 기사로 넘쳐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은 행복 하다고 합니다.

그분들 중에도

축구를 실지로 하는부류와 보는 부류로 나눌수 있는데

어느쪽이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것은 양쪽을 다하며 즐기는 분들이

행복지수가 높겠지요.

플라스하여 건강지수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연합회 경기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준비 할 것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복잡 할것은 없지만 임원들만 봉사 할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가 솔선하여 추진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모두의 열정이 필요한 시기 입니다.

 

 

 

 

축구 알아야 보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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