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후 울산 문수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K-리그 울산 현대와 광주 상무와의 개막전에서 열린 유상철 선수 은퇴식에서 유 선수가 감사패를 받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루가복음 6장 36-38절)
| 1.용서의 삶 ( 김훈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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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선처를 구하는 사람을 용서해 주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승리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용서하지 이렇게 시작된 그것이 가장 큰 사랑을 배우는 | ||
2.유상철(전 국가대표)
“왼쪽 눈의 시력도 점점 잃어가고 마지막 희망인 월드컵 마저도...”
갑작스런 은퇴 발표로 많은 축구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유비’ 유상철(35)이 자신의 축구인생 비화를 털어놔 주위를 숙연케 하고 있다.
자신의 터전인 푸른 그라운드를 날렵한 야생마처럼 질주했던 그였지만 남모를 핸디캡과 아픔에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왼쪽 눈은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른쪽 눈 하나에 의지한 채 그는 자신의 축구인생에 ‘투혼’을 불어넣었다. 그는 경신고 2학년때 왼쪽 눈에 뜻하지 않는 불행이 찾아와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그는 축구선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숨긴 채 오직 태극마크를 하나만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시력검사때 정상적인 오른쪽 눈으로 왼쪽 눈 테스트를 하는 편법(?)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렸다. 자신의 플레이에서 오른쪽에서는 환하게 잘 보였지만 왼쪽에서는 동료와 상대방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해 속으로 많은 애를 태웠지만 ‘자신만의 감’으로 이를 극복했다.
특히 야간경기때는 조명으로 인해 남들보다 두배나 힘든 경기를 묵묵히 치르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김호 감독이 맡고 있던 지난 94년 3월5일 미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 역경을 이겨내는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의 전형으로 90분을 부지런히 소화하며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는 94년 10월11일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일본과의 8강전에서 A매치 첫 골을 쏘아올리며 일약 스타덤에 뛰어올랐다. 또한 히딩크 감독 재임시절이었던 2001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 코뼈가 주저앉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헤딩으로 역전골을 만들어낸 우직함도 과시했다.
여기에 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 동점골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 쐐기골을 터트리며 월드컵 2개 대회 연속골 기록을 보유하기도 했다.
특히 월드컵 첫승을 안긴 폴란드전 이후 그는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라커에서 자신만의 눈물을 조용히 흘리기도 했다. 한일월드컵 이후 J리그에 재진출한 그는 지난해 K리그 울산 현대로 다시 복귀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자신의 은퇴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강한 의욕 때문이었다. 그러나 왼쪽 무릎 부상 등 크고 작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K리그에서도 많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면서 의욕이 서서히 꺾였다.
그러나 자신의 축구 인생의 마지막인 ‘독일’이라는 단어만큼은 잊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힘든 재활훈련을 견뎌내며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롭게 출범한 아드보카트호의 부름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을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주위에서 독일에 가야 하지 않냐고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졌다. 솔직히 좀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독일월드컵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려던 나의 계획이 어긋나 너무 아쉽다. 나를 아껴준 팬들의 뇌리에 남는 은퇴를 하고 싶었는데 죄송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제 그는 조만간 소속팀에서 은퇴경기를 끝으로 팬들과 그라운드에서 아쉬운 이별을 고하게 된다.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한국 축구에 ‘뚝심과 자존심’을 아로새긴 그의 퇴장이 안타깝기만 하다." (펌글)
어제(3/12)는 둔촌동성당 축구팀의 초청으로
성내중학교에서 친선경기가 있었습니다.
3개팀(에끌레시아,녹번성당,베리타스)과 상대팀 2팀이 돌아가며 경기를 가졌습니다.
녹번팀과에끌레시아팀에게 스코어상으로 대승하였지만 내용면에서는 선수개개인의 기량차와경기감각
에서 큰편차를 보여 경기의 흐름을 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소 쉽게 경기를 풀어 갈 수있는 상황이었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에끌레시아팀은 우리를 이기기위해 적극적인 압박(개인 맨투)과 대쉬로 선전하였지만...
열정을 뒷받침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경기 운영 공부를 하였으면 합니다.
개인의 기량보다는 팀플레이방향으로 조직력을 중점으로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객개인의 평점을 매겨 실력향상및 재미를 배가 시켰습니다.
조만간 훌륭한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에끌레시아 화이팅!
유비 '유상철'의 은퇴는 아쉽지만 세월은 그를 축구무대에서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측면 수비수로 뛰었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있었다."(히딩크 감독)
멀티플레이가 좋다지만 성공하기위해서는 전문플레이로 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박성화 감독도 80년도초에 멀티플레이로 각광를 받은것으로 기억됩니다.
월드컵 연속골과 키가 작아서 키가 큰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경수술을 하였다는 재미있는 일화를 가진
유상철은 이제 은퇴의 길로 떠났습니다.
축구 알아야 보고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