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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 스페인 라망가 전지훈련에서 맹훈련 중인 김병지의 모습을 이운재가 지켜보고 있다. |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루가 복음 6장20-26절)
1.우문현답(愚問 賢答)
"당신을 보면"잘생겼다"고 아첨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 어머니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임무는 나를 잘 가꾸는 게 아니라 외국인들이 나의 조국을 아름답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중국 리자오싱 외교부장의 현답-동아일보 기사에서)
2.축구 이야기
| '운재 독재 끝'
살아남아야 골문지킨다 |
| 김병지 대표팀 컴백 추진 |
김병지와 이운재. 이들은 최고의 라이벌이다. 꽃은 이운재가 먼저 피웠다. 청주 대성중→대성고→경희대에서 착실하게 골키퍼 수업을 받은 이운재는 94년 3월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반면 김병지의 축구 경력은 초라했다. 소년의 집 출신인 그는 불러주는 팀이 없어 동호회라고 할 수 있는 창원 LG산전 직장인 팀에서 뛰며 축구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A매치 데뷔도 이운재 보다 늦었다. 92년 현대 호랑이에 입단, 휘황찬란한 헤어스타일로 주목받은 그는 95년 코리아컵 코스타리카전을 통해 A매치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다보니 월드컵 데뷔도 이운재가 빨랐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 대표팀 막내로 이름을 올린 이운재는 독일과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교체 출전해 기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운재의 상승세는 김병지의 출현으로 한 풀 꺾였다. 95년 대표팀 주전 자리를 잡은 김병지는 이후 독주 체제를 갖추었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도 3경기나 출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 또 다시 변화의 물결을 탔다. 톡톡튀는 행동이 화근이 돼 김병지는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 이에 비해 이운재는 기복없는 플레이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수개월전 김병지가 다시 히딩크호에 발탁됐지만, 히딩크 감독은 김현태 GK 코치의 조언을 받아 월드컵 직전 이운재를 주전으로 최종 낙점했다. 그리고 이운재는 월드컵 8강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며 각광을 받은 반면 김병지는 벤치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이제 9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운재와 김병지의 GK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 김성원 기자 newsme@>
축구에서 골키퍼 포지션은 매우 중요하다고 매번 이야기해도 낯설지가 않을 것입니다.
매주 경기를 하면서 느끼지만 골키퍼의 취약성이 눈에 들어오며, 매번 지적하지만 시정은
쉽지가 않습니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경기에서 골키퍼가 방방떠야 합니다.
잘하다가도 한번의 실수로 욕을 얻어먹는 포지션이 골키퍼입니다.
순발력도 있어야하고 판단력,집중력도 필요합니다.
또한 경기를 보는 눈도 있어야합니다.
전체적인 경기흐름을 보면서 벤취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각선수의 취약점등을) 파악하여 각선수들
에게 지시하는 매우 중요한 포지션입니다.
골키퍼의 자세가 불안하면 다른 포지션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경기의 승패에도 지대한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시고 연습(프로경기 시청 포함)만이 경기의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박지성선수는 매번 경기 때마다 '이 경기장에서는 내가 최고'라는 암시로 축구를 한다고 합니다.
이기는 축구로 가기위해서는 첫번째로 골키퍼 포지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 됩니다.
축구에서도 공짜는 없습니다.
축구 알아야 보고 할 수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