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은총을 찾아서

2006. 7. 8. 오후 6:59:02

글자

소록도 본당의 강길웅 신부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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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은총을 찾아서 - 십일조안에 들어있는 선물

 

한센병 환우들의 정착 마을이 전국에 약 60개 정도 남아 있는데 종교적으로 분류하면 세 가지 형태이다. 개신교 단독 마을, 천주교 단독 마을, 천주교·개신교 혼합마을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숫자상으로는 개신교가 훨씬 우세하다. 오래 전 혼합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1960년대, 그 때에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환우들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 다행히 천주교에서는 구호물자가 나와서 밀가루다, 강냉이다 해서 배급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 신부들이 간간이 쌀값이다, 연탄 값이다 해서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거지 신세나 다름없었다.


생계가 어려운 환우들은 읍내에서 내려가 각설이 타령으로 돈 좀 얻어 끼니를 때우고 살림을 꾸렸는데 조금 여유가 있는 자들은 양돈이나 양계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때는 가난했지만, 움막일망정 내집이 있다는 것을 대견스러워했으며, 나중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감격이엇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웬일로 하는 일도 잘 안되고 너나없이 살림이 어려워 대부분 주저앉았는데, 개신교 신자들만큼은 이상하게 힘을 얻어 쑥쑥 일어서서 자립을 하는데, 이게 도대체 이상한 일이었다. 자립을 한다면 당연히 도움을 받는 천주교 신자 쪽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도움이 전혀 없었던 개신교 신자 쪽이 먼저 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개신교 신자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들이 동냥해 온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느님의 몫으로 바쳤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그런 십일조 신앙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 신부들이 환자들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으니 교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에, 이를테면 '받는 신앙'은 크게 있어도 '바치는 신앙'은 없었던 것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없는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바치는 개신교 신자들은 더 부지런하고 검소해질 뿐만 아니라, 더 기도하고 더 찬송하게 되었는가 하면, 천주교 신자들은 바치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밤낮 없이 술만 마시고 싸움을 할 뿐 아니라 밤새도록 돈내기 화투를 치는 등, 무절제한 생활이 그들을 병들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아무리 가난해도 하느님의 몫을 하느님께 바쳐야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의 몫에는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생전 누가 그런 말씀을 들려주는 이가 없어 십일조의 은혜를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광주라는  도시에서 시골인 함평 성당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함평군 자체가 빈군이라 본당도 가난했고 열 개나 되는 공소도 모두 형편없이 가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음도 없고 표정도 없는 신자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신부가 웃겨도 신자들이 웃지를 않으니 그런 어색함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이 분들이 1년 내내 교무금을 내지 않고 빈 손으로 성당에 나오다가 연말에 가서야 비로소 1년 치라면서 누구는 5천원, 누구는 1만 원 식으로 교무금을 내는데 바로 그때,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 신자를 대상으로 대림절 피정을 시키면서 봉헌과 십일조에 대해 크게 강조했으며, 그리고 교무금은 매월 초에 바치라고 다그쳤다. 그랬더니 교무금이 평균 400%가 인상이 되는데, 이듬해 1월 초가 되자 본당은 물론 10개 공소에도 교무금이 넘치도록(?)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도 놀랐지만 신자들도 놀라면서 신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웃기지 않아도 웃을 줄 알게 되었으며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마태6,21)고 신자들이 봉헌한 것만큼 서로 열심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전에는 공소 신자들이 나만 보면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하면서 우는 소리를 했는데 상황이 달라지자 이제는 교회를 위해 자신들이 뭘 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성당 증축과 신축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왔으며, 그리고 자기들끼리 공사를 하는데 그때 많은 곳에서 청하지도 않은 도움이 들어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맞았다.


그때 공소마다 성당 신축과 증축이 많았으며 사제관, 수녀원 등도 순전히 자기들의 힘으로 지었다.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났던 시절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신자들 수가 왜 그렇게 계속 증가할 수 있었는지, 우리 모두가 즐거운 시선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 하시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는 신나는 일들이 줄줄이 있었다.


성지 순례를 갈 때면 버스 열 대를 동원하여 가는데, 시골에서 버스행렬만 해도 그때는 장관이었다. 그리고 공소마다 예비 신자들이 증가하여 선교사들을 초청해 담당케 했으며, 두 공소에서 수녀님들을 모시더니 결국은 신부님들까지 모셔서 본당으로 자립도 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일은, 사람이 하면서도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었다.

 

교무금과 주일 헌금은 '돈 얘기' 가 아니다. 이것은 은혜의 얘기요 축복의 선물이며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며 '십일조 신앙' 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붙들어 매게 된다. 하느님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과는 다르다. 십일조로 신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 하자.

 

강길웅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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