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성찰

2006. 6. 8. 오후 1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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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 성찰

<고해성사(화해의 축제)...안셀름 그륀...분도출판사>

 

고해를 위해 살펴보아야 할 것들을 크게 셋으로 나누면 이렇다:

첫째,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둘째,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셋째, 나와 타인과의 관계.

고해자는 이 세 관계를 면밀히 검토하여 자신이 그 관계속에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떤 관계가 자신을 불만족스럽게 하는지, 혹은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죄책감을 가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뉘우쳐야 할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따라서 고해해야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해는 단지 죄를 고백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고해 행위는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그 성찰의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과연 그것이 죄인지 아니면 나약함인지 혹은 경솔함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일상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않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 역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결과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지 언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당장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화를 그 구체적인 하나의 문제에 국한시킨다. 이 역시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알고 싶은 것은 혹은 알아야하는 것은 그 문제의 실상 즉,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바와같이 무엇보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상황을 고해자가 왜곡시키지 않고 직시 직언하는것이 필요하다. 고해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느끼는 문제점, , 무엇을 어떻게 고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렇게 자문해 보자:

하느님은 나의 삶에서 어떤 존재이신가?

나는 하느님을 내 삶에 받아들이는가?

나는 하느님을 갈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곁에 계신 하느님을 그냥 지나쳐버리는가?

나는 하루중 어떤 행위로 하느님의 현존을 일깨우는가?

나는 아침마다 하느님의 축복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가, 아니면 하느님과 무관한 아침을 맞고 하느님과 무관한 하루를 보내는가?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공허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나를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나는 자신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있는가?

나는 하느님을 내 삶의 원천이자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한 위의 질문은 내 양심에 관한 질문인 셈이다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 관련된 질문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의 문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나는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지고 있을 뿐인가?

나는 내면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가, 아니면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얽매여 있는가?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가?

건강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는가?

하루를 계획해서 살아가는가, 아니면 하루라는 시간을 때울 뿐인가?

나는 나 스스로를 심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어떤 상상들을 하는가? 그 상상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그 상상들에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나는 우울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혹은 자기 연민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동정함으로서 오히려 자신을 추락시키지는 않는가?

이제 우리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마지막 범주의 질문들은 타인과의 갈등에 관한 것들이다.

그와 나 둘중 어느 한쪽만 과도한 부담을 진 관계는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갈등상황을 나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는 나에게 무엇을 연상하게 하는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게는 왜 그렇게 힘이 드는가?

그는 내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가?

만약 고해자가 주위의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자신을 혹은 그 누군가를 탓하거나 용서하기 전에 먼저 그 갈등 양상을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면 될수록 아마도 고해자는 갈등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점점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가 비록 갈등 상황에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성찰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해 어떤 말들을 하는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나는 그를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멸시라고 있는가?

마음속으로 그를 끊임없이 판단하고 심지어 심판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는 그 위에 서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나는 그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는가?

나는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마음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오직 나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는가?

 

 

댓글 2

  • 2006년 6월 8일 오후 10:15

    세미나 떠나는 헬레나에게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저도 제대로 된 고해성사를 보고 싶습니다.

  • 2006년 6월 9일 오전 9:02

    하느님께로 더욱더 향해가는 두분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받은 은혜 더 많이 나누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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