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만에 글을 올립니다. 이곳 멜번의 한인순교자 성당은 수요일 저녁에 평일미사가 있습니다. 지난 주 부터 본격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한주의 중간 정도되는 날에 미사를 드리는 것이 참 좋을 듯 싶었습니다. 어제도 다녀왔는데, 어제는 성당 한 교우분이 돌아가셔서 장례미사는 아니지만 그걸 준비하는 사망미사(?)라고 하던데 하여간 지난 주보다 많이 오셨고 당연히 무거운 분위기였습니다.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평상복으로 갔습니다. 매일매일의 일상속에서 살다보면 그런 날이 우리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많이 잊습니다. 어제는 그걸 다시금 두가지의 상반된 느낌으로 받았습니다. 두려움과 기쁨.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성모찬송에 표현되는 눈물의 골짜기인 이세상을 지나 하느님과 영원히 거할 수 있다는 기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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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 19]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할 것인가?(4)
제6규범: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숨어서 활동하십니다
43. 우리 안의 모든 것은 원죄와 본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으며,
육체적 관능뿐만 아니라 영혼의 모든 능력까지도
타락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타락한 우리 정신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들을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만족으로 바라본다면
그러한 선물과 행위와 은총 역시 아주 더럽혀지고,
하느님께서는 거기에서 당신의 눈을 돌리신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사람의 정신의 눈길과 생각이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과
은혜를 상하게 한다면 정신의 행위보다 더 타락한
우리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옳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람들이 눈길이나
자기의 지식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느님의 시야 안에 감싸서 숨겨 두기”(시편 31,21참조)
원하시는 것을 놀랍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질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숨겨 두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굴욕을 마련해 주십니까!
그분은 또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그들이 바오로 사도처럼 어떠한 유혹이라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까!
어떤 불안과 암흑 그리고 고독에도 그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까!
당신의 성인들과 그들을 겸손과 성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데려가시는 길을 보면 하느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십니까!
제7규범: 십자가, 죄에 대한 벌
44. 그러므로 여러분의 십자가는 큰 것이고
그 십자가는 여러분의 충성에 대한 시험이며
동시에 여러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믿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자신만을 찾는 교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 안에는 아주 작지만 대단히 중대하고 지극히 위험하며
교만한 정신이 숨어 있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만하고 허풍이 심해서 지푸라기를 들보로,
바늘에 찔린 것을 칼에 맞는 것으로, 모기를 코끼리로 과장합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우연한 말이나 아무 의미 없는 것을 가지고
지독한 모욕이나 엄청난 배신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보내시는 십자가는 특별히 베푸시는
어떤 호의의 표시가 아니고 여러분의 죄 때문에 내리는
사랑에 가득 찬 벌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십자가와 겸손을 위해 보내시는
그 어떤 굴욕도 여러분의 많고 큰 죄에 비하면
무한히 너그럽게 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들을 거룩하신 하느님을 통해서만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불의한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그 거룩함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죄를 사건이 일어나 시점에서부터
명백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죄 때문에
고통으로 시달리신 나머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지옥을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아마 천만 번 지옥에 가야 마땅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의 그 인내 속에는 여러분들의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친구들에게나 고해 신부에게 극히 자연스런 마음으로
털어놓음으로써 잔잔한 위로를 받아 보겠다는 조그마한 욕망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교묘하고 재빠르게 자신을 변명할 줄 아십니까!
또 이웃 사랑을 가장하여 얼마나 그럴싸하게 하소연을 합니까!
십자가를 지게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얼마나 불미스럽게 말합니까!
여러분은 루치펠처럼 자신의 위대함을 믿지는 않습니까?
고통을 받는 중에라도 그 교활한 면에 대하여 표현하고자 한다면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