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부로 샌디에고 한인성당 본당 신부님으로 오시는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습니다. (경향잡지 1999년) 함 읽어 보세요.
******************************************************************************
야, 임마! 네가 신부냐?
신부의 꽃은 본당신부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본당신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본당신부가 되면 온갖 열성을 다해 신자들을 위한 일을 추진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회합을 주도하며 술판도 벌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젊음에 불타는 시행착오를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급기야 이것저것 “안됩니다.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하며 제동을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서 더 고집하고 밀어붙입니다. 신부는 대장이니까요. 감히 평신도가 “뭐? 본당신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해? 따라오면 되지.” 건방지게 내심 이런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밉기까지 하고 회합할 때 은근히 빠져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 중요안건을 결정해서 입을 막아버리려 하는데 꼭 참석하니 꼴보기 싫었습니다. 저놈은 몸살도 안 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공소에서 승격된 지 2년이 채 안된 본당이지만 본당신부 발령을 받고 열성을 다하리라, 마음껏 뛰어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경륜이 많으신 전임 신부님 때문에 빛이 나질 않았습니다. 열심히 해도 어린아이 취급하니 답답했습니다. 은연중에 자기들이 결정하고 원하는 대로 따라오길 바라니 화가 납니다. 말끝마다 ‘전에는 이랬는데.’ 할 때는 정말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 본당신부는 나란 말야.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소리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강론 때 그랬습니다. “본당 수녀원을 건축하는 데 적극 협조해 주십시오. 특별히 공소 신자분들도 기금을 적립한 것이 있으면 우선 본당을 위해 모두 봉헌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겁니다. 몽땅 내놓으십시오.” 며칠 뒤 공소 신자분들이 식사 대접한다 해서 나갔는데 한참 술잔이 오가더니만 난데없이 “야, 임마! 네가 본당신부냐, 신부면 다냐, 네 마음대로 다하냐?” 참으로 당혹스럽고 얼떨결에 당했습니다. 그래서 맞받아 쳤습니다. “그래 임마! 나 신부다. 신부 알기를 우습게 아냐. 신자면 신자답게 살아야지. 술 한잔했다고 그러면 되냐?” 옆에 있던 신자들이 그 형제에게 신부님께 그러는 게 아니라며 말렸지만 속으로는 자기들을 대변해 줘서 고맙다는 눈치입니다. ‘그래, 너 잘했다.’ 박수 치고 있는 듯했습니다. 술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회장님, 그만 갑시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너무 분한 마음에 며칠 동안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 이게 뭐야? 신부에게 그럴 수 있냐?’ 생각하면 할수록 미워질 뿐입니다. ‘네가 신부에게 그래놓고 편히 잘 있나 보자.’
감실 앞에 앉아도 그놈이 자꾸 떠오릅니다. ‘주님! 이럴 때는 어쩌죠? 주님 말씀 좀 하십시오.’ 씩씩거리길 며칠, 감실의 예수님께서 ‘너 내 마음 아니? 너 신부라고 폼잡다가 한방 맞고 뭘 그러니? 너 신부 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하시는 겁니다. 그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품으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품으십시오.”(필립 2,5)라는, 서품 때 선택했던 말씀을 찾아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도 참 못된 놈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커녕 미움을 키워가고 있었고 먼저 용서 청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삶의 경륜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려고 했으니 부끄럽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기네 공소가 더 큰데 엉뚱한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불만이 가득 차있었는데 공소 기금을 몽땅 바치라 했으니 어떠했겠습니까.
형제에 대한 미움 때문에 주님 앞에 선 것이 은총이고 복입니다. 그 형제가 은혜의 도구였습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더 교만해지고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을 겁니다. 그랬다면 오늘도 “야, 임마! 네가 신부냐?” 하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을지.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히브 12,6) 하셨는데, 견책의 도구로 그 형제를 축복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오늘 그에게 기쁨의 전화를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