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곳 호주의 공휴일인 ANZAC DAY였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현충일이죠. ANZAC은 Australia New Zealand Army Corps 의 약자입니다. 호주가 독립국가로써 처음으로 일차대전에 뉴질랜드와 같이 참전했다가 터키의 한 해변에 잘못 상륙하여 거의 다 전사했다고 하더군요. 하여간에 어제는 오래만에 날씨가 좋아서 tv로 보니까 이젠 퇴역군인인 많은 노인들이 가족들과 같이 행진하더 군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호주는 한국전에는 참전했었죠? 고마운 일입니다. 4월은 호주에 휴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아마도 내일 쯤에는 짐이 집으로 올 것 같습니다. 이 짐과 그 일을하는 분 덕분에(?) 현재 연재하고 있는 "십자가의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주요 내용인 (나중에 아시겠지만) "작은 십자가"의 실습을 잘 하고 있습니다.
========= [십자가의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 9] 아버지의 나라 (2) ===========
26.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십자가의 벗들이여,
십자가의 신비는 이방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고,
유다인에게는 배척당하며,
이단자와 비신자들에게는 경멸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전당에서 실제로 배워야 하고
습득해야하는 위대한 신비입니다.
여러분이 그 신비를 학교에서 가르쳤다는 철학자를 찾거나
감각 기능이나 이성의 빛에 물어 보아도 헛될 것입니다.
이 신비를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 승리의 은총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토록 위대한 스승 밑에서 뛰어난 지식에 정통해지고,
다른 모든 지식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식이 가장 높은 차원에서
다른 모든 지식을 포함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지식은 우리의 자연적 및 초자연적인 철학이고
신성하고 신비로운 신학이며,
거친 금속을 인내로써 귀금속으로 변화시키고
뼈아픈 고통을 환희로, 가난을 부귀로,
그리고 심한 모욕을 영광으로 변화시키는 화금석입니다.
여러분 중에 제 십자가를 충실히 짊어지는 자는
그가 기역(ㄱ), 니은(ㄴ)도 모른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유식한 자일 것입니다.
천사들도 알지 못하는 신비를 깊은 탈혼 상태에서 깨달은
바오로 사도의 말을 들어 봅시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특별한 지식이 없는 여러분은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고통을 즐거이 잘 참아 받을 줄 안다면
여러분만큼 그렇게 고통을 참아 견딜 줄 모르는
대학 교수보다도 더 현명한 자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니 이 얼마나 큰 영예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고통을 당해야겠습니까?
머리가 가시관을 썼는데, 지체들은 장미 화관을 써야겠습니까?
머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조소를 당하고 진흙투성이가 되셨는데
지체들은 왕좌에서 향수를 잔뜩 뿌리고 둘러싸여야겠습니까?
머리는 편하게 쉴 베게도 가지지 못했는데
지체들은 부드러운 깃털과 솜털방석 위에 드러누워 있어야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랑하는 십자가의 동행자들어여,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디에나 쉽게 볼 수 있는 유행에 민감하며
지나치게 근엄하고 세심한 저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아니며
참다운 지체도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가시관을 쓴 머리와 복음의 진리에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 주님,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분의 무자비한 박해자라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그들은 손으로는 십자 성호를 긋지만
마음속으로는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가시관을 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에서 생활한다면,
가시와 채찍질, 못, 한마디로 말해서
십자가밖에는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에게 처럼
가시관과 장미 화관을 내놓으면
주저하지 말고 성녀처럼 가시관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그것을 머리에 써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