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생명 건지는 희생 가장 값져”
![]() △ 김재복 수사가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에 반대하며 청와대 앞에서 참회의 단식기도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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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쪽 청와대 앞에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쉬어가는 사랑방이 있고, 그 옆에는 등나무 쉼터가 있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하는 곳이다. 요즘 사랑방 근처는 스님을 찾는 발길로 분주하다. 단식 50일째를 훌쩍 넘긴 지율 스님의 생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탓이다.
스님이 좌정하고 있는 시멘트 기둥 뒤편에는 또 한 사람의 수도자가 단식을 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파병철회를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한 김재복 수사(가톨릭 마리아회 소속)이다. 파병이 강행되자 지금은 ‘참회단식’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랑방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대개 ‘저 이는 누구일까?’ 잠시 머리를 갸웃거리고는 김 수사 곁을 지나쳐 지율 스님에게 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김 수사의 입가엔 마냥 웃음기가 감돈다. 세상의 관심을 막아주는 스님의 그늘이 고맙다. 단식 29일째(지율 스님은 55일째)를 맞은 23일 김 수사를 만났다.
마침 인왕산 그림자가 청와대 앞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산들바람에 실려 가로수와 풀섶, 푸른 기와와 경복궁 돌담에 내려앉은 저녁놀 빛으로 청와대 주위는 한없이 평화로웠다. 생명을 건 평화적 싸움이 진행중인 현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본회에는 보고했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을 막자는 것이니 상부에서 뭐라 하겠어요.”
“어떤 목적이라도, 그것이 생명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요?”
“다른 생명을 건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은 없습니다.”
“제 생명이라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내줘야지요. 저는 생명을 걸지 않았어요. 썩어야 할 자리에서 썩으려는 거지요.”
그가 기대어 있는 등나무 그늘막 기둥엔 “참회기도/전쟁반대, 파병반대”라고 적힌 도화지 한 장이 붙어 있다. 천성산 터널공사에는 절충안이란 게 있다. 지율 스님에 대한 설득은 그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파병과 전쟁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참회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내보냈습니다. 누군가는 거기에 대해 책임도 지고 참회도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도 해야 합니다. 선발대가 떠났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단식으로 뭘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나부터 참회하며 생명 평화를 기원할 뿐”
말은 옳지만, 참회에 생명을 건다면 그가 믿는 하느님이 용납하실까.
“단식으로 무엇을 하겠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나부터 반성하고 참회할 뿐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생명 평화를 기원하고 기도를 할 뿐입니다.”
그건 밥을 먹으면서도 할 수 있다.
“처음엔 파병철회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없습니다. 저 사람들(청와대 쪽을 가리키며)이 오다가다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갖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자신의 참회가 저들의 반성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에게 김 수사의 이름은 생소하다. 그러나 노동계와 환경 평화운동가들에겐 익숙하고 고마운 이름이다. 1995년 종신 서원을 한 그는 학교에서 일하다가 2000년 인천 산곡동 샤미나드 센터 책임자로 부임했다. 전형적인 달동네다. 그는 센터를 사회복지시설로 개조했다. 공부방과 놀이방을 운영하고,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지원했다. 겨울나기 힘든 노인들을 모셔와 한겨울을 지내도록 했다.
2001년 초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샤미나드 센터로 들어왔다. 명동성당의 퇴거요청에 따라 새 피난처를 찾던 중이었다. 노동자들은 그해 말까지 센터에 머물렀다. 이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간부들이 피신해 왔다. 그해 말 이들이 센터를 나서기까지 그 주변엔 150여명의 전경이 상주하고 있었다. 관할 경찰서 서장이 3명이나 바뀌었다.
본원에서는 명동성당이 철수시킨 노동자들을 받아들인 이 센터와 김 수사가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 수사에게 불청객을 내보내라고 설득했다. 말을 듣지 않자 김 수사를 아예 본원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김 수사는 ‘교회를 믿고 찾아온 이들을 어떻게 내팽개칠 수 있느냐’며 센터를 지켰다. 지난해 초 전공노 노동자들이 센터를 떠나자 곧 본원으로 올라왔다.
그 뒤 김 수사는 사회정의복지 분야 개인 사도직을 맡았다. 사회적 현안이 발생하면 그 현장이 그의 일터였다. 당시는 이라크 파병 동의안 비준 문제로 소란스러울 때였다. 그의 일터는 국회 앞이었다.
풍찬노숙에도 매일 묵상
내적 충만감 속 세상 명징해져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그는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팀에 합류했다. 6월엔 전쟁중인 이라크로 날아가 반전평화팀에 합류했다. 2개월 만에 귀국하자, 전북 부안은 핵쓰레기장 문제로 ‘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다시 부안으로 달려가 등교를 거부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다.
9월 초 다시 이라크로 들어갔다. 본원에선, 죽으려고 가는 거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11월 반전평화팀의 철수 결정에 따라 귀국한 그는 6개월 남짓 문정현 신부 등과 평화유랑단을 결성해 전국을 순회했다. 30여개 도시에서 길거리 강연 등을 통해 왜 이라크에 파병해선 안 되는지 설득했다. 유랑단은 지난 5월29일 미군기지가 집결되는 평택에서 이틀간 평화축제를 열고 활동을 마감했다. 모처럼 휴식을 취하던 중 김 수사는 가톨릭 청년들이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금식기도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7월26일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렇게 풍찬노숙 속에서도 그에게는 꼭 지키는 규율이 하나 있었다. 새벽 5시면 일어난다. 간단히 몸을 푼 뒤 묵상에 들어간다. 묵상은, 하느님이 이끄는 대로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관상 상태로 이어진다. 불교의 삼매와 같은 상태다. 이어 성무일도, 오늘의 말씀 등 정한 순서에 따라 미사를 올린다. 잠자리에 들면 만트라(진언)를 외운다. 그의 진언은 ‘예수’ 혹은 ‘마리아’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 외우다보면, 두어 시간 지났을까 싶은데 동이 터올 때도 있다고 한다.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시간이다.
“힘든 건 없습니다. 오히려 내적인 충만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고, 모든 사태가 명석하게 다가옵니다. 말할 수 없는 환희감을 느끼곤 하지요.” 꽤나 배가 고플텐데, 괴로운 기색이 하나도 없다. 별일이다.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한겨례 신문 8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