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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째 날(Der Neunte Tag, 2004년 작)
감독 : 폴커 슐렌도르프
안녕하세요?
김상용 수사 입니다.
저는 그동안 멕시코의 Chalco 라는 마을에서 실습을 마치고 어제 버클리로 돌아왔습니다.
아주 좋은 체험 이었고 도전도 많이 있었지만 보람있는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종교와 사회>에 대한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죠.
신자유주의 경제세례를 가장 최전방에서 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을 때론 무감각히 마취하려드는 종교의 역방향 역할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 우리가 함께 보게 될 영화는 이러한 종교와 사회의 주제를 역사적으로 통찰하고 있는 독일의 거장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9번 째 날> 입니다.
저에게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탱탱한 피부와 새까만 머리가 지금의 박신부님 머리칼 보다 훨씬 길고 질도 훌륭했던 그때,
파리에 유학하고 있었죠.
그땐 매주 금요일 <감독 주간> 때 여러 유럽의 거장들을 만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폴란드의 거장,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감독과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 그리고 바로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 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독일의 작가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1979년작) 을 연출 한 후, 그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나서 왠일인지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미래의 감독들이 될 젊은 영화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지한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저는 뭔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길이 없었고 다만 뉴저먼 시네마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한 거장의 쓸쓸한 옛날얘기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죠.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이제 영화 현장에서 감독 모두들이 모니터를 보고 프레임을 잡기 때문에) 모니터가 나오기 전에는 감독들의 전유물이었던 디렉터스 뷰(Director's view)라는 것이 있었어요.
카메라의 렌즈 싸이즈를 축약한 35mm 규격의 렌즈인데 감독들은 모두 그것을 목에 걸고 앵글을 잡고 케메라 감독에게 자신의 렌즈 싸이즈와 프레임을 정확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미장센(장면화)을 구축해 나갔죠.
폴커 감독은 디렉터스 뷰를 자주 보며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자신의 프레임과 카메라 위치를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서 영화 교육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프랑스의 IDHEC 이라는 국립영화학교가 유럽의 영화인들을 길러 냈는데 그 학교 출신의 프랑스통 독일인 감독입니다.
<9번 째 날>은 2차대전 시기 암울했던 나치 치하의 역사를 반영하는 일종의 역사물인데, 정치학을 전공한 감독의 경력에 걸맞게 종교와 사회 그리고 정치라는 주제를 크레머 라는 극중 주인공 신부의 갈등을 통해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룩셈부르크 출신의 신부 크레머는 다차우 수용소의 강제 수용소에서 은밀한 모종의 협박성 미션을 부여 받고 룩셈부르크로 잠시 감옥소를 벗어나는 불안한 행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9일 안에 룩셈부르크의 주교가 나치에 협력하도록 설득하여 성공할 것을 강요받은 것이죠.
그것이 크레머의 미션입니다.
만약에 이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면 크레머는 더 혹독한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 어떻게 될까요?
올바르지 못한 미션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한 사제가 택하는 양심은 이미 "권력" 으로 인해 심각히 홰손되어 있는 상태 입니다.
이 부조리한 상황 안에서 신과 개인 그리고 개인의 신념과 교회가 이야기하는 신앙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합니다.
이것을 조장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다름아닌, 공포감 입니다.
공포
이것은 우리 안에 있으면서 바깥의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인간 역사 상 가장 교활하고 정교하게 등장한 것은 정치권력으로 인한 공포감이었죠.
이 이야기는 실제로 나치 권력의 첫번 째 강제 수용소로 알려진 다차우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버나드(Jean Bernard) 신부의 이야기를 픽션화 한 영화 입니다.
실지로 나치 시대 때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던 교황 비오 12세의 침묵이 절절히 통감되는 가슴아픈 영화 입니다.
종교와 사회 그리고 권력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영국의 켄로치 감독의 <레이닝 스톤즈(Raining stones)>라는 뛰어난 작품도 있습니다.
함께 감상하시면 좋으 듯 싶네요.
제가 Chalco 마을에 있을 때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하이메(Jaime)라는 스물네살 청년이 있었는데 저랑 주말에 축구를 많이 했어요.
제가 떠나오는 날, 미리 준비해 간 한국에서 사온 전통 북이 달린 열쇠고리를 선물했더니 아무것도 줄것이 없었던 그는 "선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뵈는 광고지(그곳은 고급 종이가 귀해서 그런지 빴빴한 광고지를 모으고 다니더라구요 돈이되나봐요) 하나를 저에게 주더라구요. 힘센 근육질 남자가 씨익 웃으며 휴대폰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그 위에 에스파뇰로 뭐라고 씌어 있어서, 비행기 타고 돌아 오는 길에 옆에 앉은 미국수사에게 물어봤죠.
" 야, 이게 무슨 뜻이냐?"
Ser diferente .....
.....Ser para los dema's
다르게....
그 밖의 것을 위하여....
새해에는 "다르고 그 밖의 것을 위해서" 사시는 한해가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