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2006. 8. 29. 오후 4:24:35

글자

그때에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마르 6,17­-29)

 

 

 한 여교우가 정신과 전문병원 원목실에 와서 스물여섯 살 난 아들을 강제 입원시킨 일에 죄책감을 느껴 괴롭다고 했다. 청년은 마르고 보통 키에 피부가 희고 얌전하고 착한 인상이었다. 그도 여느 환자들처럼 잘못한 것을 많이 후회하고 이제부터 잘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때는 말 그대로 믿기보다는 그의 원의를 알아주고 거기서 힘을 얻어 병원생활을 잘 하라고 독려하는 것이 옳다. 청년은 중학교 1년 때부터 엄마에게 간간이 욕설을 했다. 그러나 여인은 엄격한 성품인 남편에게 말하면 집안이 시끄럽고 창피하다고 덮어두었다. 천재인 큰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고 집안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생각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청년도 머리가 좋았으나 고교 졸업 후부터 두문불출하고 컴퓨터에 빠지고 폭력을 하므로 마침내 남편이 알게 되었고 이웃에 창피하여 따로 살 집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청년의 정신병적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여인은 체면과 현실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여 청년과 온 가족에게 줄곧 거짓말로 위기만 모면한 결과 아들을 환자로 만들고 말았다. 만일 청년과 가족에게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고 전문의의 도움을 청하였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년은 거짓말로 순간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어머니에게 보복하려고 의도적으로 폭언을 하였으나 점점 자폐적인 행동을 거듭하면서 그만 빠져 나올 길을 잃고 말았다. 참으로 아까운 한 청년의 인생이었다. 여인은 내게도 여러 번 아들에게 거짓말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때마다 진실만이 아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여인 역시 오랜 세월 스스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었기에 헤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복음에서 헤로데는 허영심으로 뱉은 말에 걸려 넘어져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고 만다. 맹세하였다 해서 그 끔찍한 요청을 반드시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건만 손님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죄스런 응낙을 한 것이다.

김보경 수녀(전교가르멜수녀회)

댓글 1

  • 2006년 8월 29일 오후 4:24

    제가 세상에 잘 보이려 하지말고, 주님께 잘 보이려 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