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어드릴 향유는(0330 성주간 월요일)

2015. 3. 29. 오후 11:32:57

1
글자

2015. 03. 30 성주간 월요일


요한 12,1-11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어드릴 향유는>


오늘은 성주간 월요일입니다. 우리는 성주간 동안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에 함께 합니다. 우리는 성주간 동안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죽음에 함께 하기 위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럽고 참담한 여정이 마침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지리라 믿고 희망하기에 기꺼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엿새 전, 곧 당신 공생활의 마지막 한 주간의 첫날에, 당신께서 다시 살리신 라자로가 살고 있는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이미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던 예수님께 이 한 주간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요? 특별히 이 한 주간의 첫날이 예수님께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생의 마지막 한 주간 첫날에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이 잔치,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예수님을 위한 잔치랍니다. 이제 곧 곁을 떠날 이를 위한 잔치랍니다. 죽음,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스러운 죽음, 온갖 악의와 적의가 난무하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를 위한 잔치랍니다. 모든 이를 살리고 온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한 죽임을 당하러,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만 할 이를 위한 잔치랍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잔치입니까? 이제 곧 죽을,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릴 이를 위한 마지막 자리가 어떻게 잔치일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닥칠 끔찍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듭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마리아, 슬픔에 흐느끼며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지막 사랑, 자신을 송두리째 부어드립니다. 대신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오히려 기쁘게 가련마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이 한스러워, 죄 없이 죽음의 길을 가시는 주님이 안타까워, 흐르는 눈물 억누를 수 없기에, 행여 눈물 보여 주님의 마음 아프실까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하지만 정성스레 주님의 발을 닦습니다.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랑과 걷잡을 수 없는 슬픔 가득 머금은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곱게 주님의 발을 닦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읊조립니다. ‘주님 기어이 떠나시렵니까? 주님 기어이 가셔야합니까? 당신이 왜 가셔야만 합니까? 당신이 왜 죽어야만 합니까? 당신이 왜 십자가 매달려야 합니까?’


그러나 주님과 동고동락했던 한 제자는, 돈주머니를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던 한 제자는 비웃습니다. 가난한 이를 핑계 삼아 질책합니다. 주님을 팔아넘길 바로 그 제자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한 한 제자의 모습입니다.


마리아와 유다, 이미 시작된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그분만의 길이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우리 역시 함께 해야 할 길인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까? 유다의 질책과 비웃음, 마리아의 눈물과 향유,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생의 마지막 한 주간에 함께 하고픈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 마리아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십자가의 길을 떠나시는 주님께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려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땅 속 깊숙한 곳에서 남모르게 썩어 가는 밀알의 삶이라는 향유를, 벗들을 위해 기쁘게 목숨을 바치는 아름다운 사랑의 삶이라는 향유를, 벗들을 살리기 위해 나를 밥으로 내어놓는 성찬의 삶이라는 향유를, 몸소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을 따라 온갖 위선과 가식의 껍데기를 허물어버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른 이들의 받침대가 되는 육화의 삶이라는 향유를 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길에 함께 하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이번 성주간 모든 이와 온 세상을 살리시기 위하여 죽음의 길을 떠나시는 주님께 벗님들의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림으로써 가슴 벅찬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상지종 신부님 강론

목록 전체보기 →
유다 그리고 우리(0401 성주간 수요일)15.03.31조회 251최후의 만찬에 함께 한 사람들(0331 성주간 화요일)15.03.31조회 418우리가 부어드릴 향유는(0330 성주간 월요일)15.03.29조회 125나의 마지막 길에 함께 하는 사람들(0329 주님 수난 성지 주일)15.03.28조회 115종교와 정치(0328 사순 제5주간 토요일)15.03.27조회 108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서(0327 사순 제5주간 금요일)15.03.26조회 113오늘 이미 영원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0326 사순 제5주간 목요일)15.03.25조회 189천사 가브리엘과 동정 마리아(03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15.03.24조회 91예수님의 유언(0324 사순 제5주간 화요일)15.03.24조회 99용서와 화해를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0323 사순 제5주간 월요일)15.03.23조회 126십자가(0322 사순 제5주일-나해)15.03.22조회 124팸옥에서 사람임을, 그리스도임을 되새깁니다(0321 진도 팽목항 세월호 기억 미사)15.03.22조회 175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을 위하여(0321 사순 제4주간 토요일)15.03.20조회 108예수님을 아십니까?(0320 사순 제4주간 금요일)15.03.19조회 131오늘의 요셉이 되어요(0319 성 요셉 대축일)15.03.18조회 120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뜻대로(0318 사순 제4주간 수요일)15.03.18조회 139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0317 사순 제4주간 화요일)15.03.17조회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