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옥에서 사람임을, 그리스도임을 되새깁니다(0321 진도 팽목항 세월호 기억 미사)

2015. 3. 22. 오후 10: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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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21 진도 팽목항 세월호 기억 미사


<팽목에서 사람임을, 그리스도임을 되새깁시다>


아직도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는 사랑하는 조은화, 허다윤, 박영인, 남현철 학생,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 님, 권혁규 어린이, 이영숙 님을 하루 빨리 찾아서 유가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실종자 가족 여러분, 저희는 멀리 천주교 의정부교구에서 온 신자, 수도자, 사제들입니다.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보잘것없는 저희의 방문이 몸과 마음 지칠 대로 지친 여러분께 자그마한 위로나마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고통 받는 이웃들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한 무책임한 정부에 바위처럼 굳세게 맞서며 실종자 가족들의 벗이 되어주시는 자원봉사자님들과 광주대교구 형제자매님들 그리고 신부님들,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 저희의 짧은 연대의 여정이 여러분의 길고도 힘겨운 아름다운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예닐곱 시간을 달려 이곳 팽목항에 함께 하신 우리 교구 자랑스러운 믿음의 벗님들 반갑습니다. 열일 마다하고 이 멀리까지 착한 사마리아인의 값진 순례의 여정에 함께 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히 이 영광스러운 강론대에 서기 부족하기 그지없는 저는 송산성당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많은 신부님들을 대표하여 주제넘게 강론을 맡게 되었지만, 막상 이 자리에 서니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주저하게 됩니다. 스산한 팽목항 방파제와 간절한 울부짖음을 담고 있는 현수막들, 분향소의 앳된 영정 사진들, 수많은 착한 이들을 집어삼킨 진도 앞바다의 거센 바람, 팽목항을 소수의 사람들만의 고립된 섬으로 만들려는 냉혹한 사람들의 무관심과 조소에 맞서고 있는 벗들의 힘겨운 투쟁을 대신할 수 있는 강론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필요 없는 강론, 마치 사족과 같은 강론을 해야만 하는 강론자의 곤혹스러움을 애써 떨쳐버리고 귀한 여정에 함께 하신 사랑하는 벗님들께 여전히 진행 중인 2014416일을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힘차게 보듬어 가기 위해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39일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사도좌 정기 방문 중인 우리나라 주교님들께 다른 무엇보다도 첫 번째로 세월호 문제 어떻게 됐습니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셨겠습니까? 주교님들께서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교님들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당신께서 세례를 주신 이호진 프란치스코 형제는 딸 아름이와 함께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진도 팽목항에서 삼보일배를 하면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팽목항에는 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아달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쓰러질 것 같은 몸과 마음을 추슬러 여전히 쉼 없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은 혹독한 겨울을 견뎌냈습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제 그만 하자고 하면서 유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습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 무조건 세월호를 인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도 구하지 않고 그저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정부는 기술적 문제와 비용을 이유 삼아 세월호를 인양할지 말지를 검토 중이랍니다.


안산에서, 광화문에서, 진도 팽목항에서, 여러 교구, 여러 본당에서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신자, 수도자, 사제들이 끊임없이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 교회 입장에서는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하느님적이고 비복음적인 불의한 정치권력과 추악한 자본권력이 빗어낸 이 시대의 가장 고통스러운 현장을 외면했음을 가슴을 찢으며 뉘우칩니다. 사도좌 정기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 진심으로 온 힘으로 모아 세월호와 함께 하겠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지금 우리를 만나신다면, 우리 주교님들께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월호의 참혹한 고통이 씻기지 않은 아니 씻길 수 없는 팽목항에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의정부교구에서 남쪽 끝 광주대교구 진도 팽목항에 왔습니다. 단 두세 시간을 머물기 위해서 예닐곱 시간을 달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편안한 휴식의 날 토요일 새벽부터 일어나 팽목에 왜 오셨습니까? 팽목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팽목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시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따스한 생명의 봄 햇살을 부끄럽게 만드는 매서운 바닷바람이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바닷바람보다 더 가혹한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가만히 있어라,’ ‘잊어라,’ ‘세월호에 발목 잡힌 경제를 살려라,’ 쉼 없이 주문을 거는, 뜨거운 마음 내던지고 차가운 돌덩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세상, 곧 고통 받는 벗들을 보듬어 함께 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살 맛 나는 세상을, 제 살고자 죄 없는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무관심한 불의한 이기심과 사람보다 재물과 권력을 섬기는 탐욕스런 우상숭배가 가득한 얼어붙은 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팽목에 모였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부터 얼어붙은 땅을 녹여 생명을 잉태하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 죽어간 세월호의 넋들을 찬란하게 부활시키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수장당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죽음보다 더 쓰라린 죄책감에 여전히 가슴을 찢고 고개를 떨군 가족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일어나십시오. 함께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제 길만 가라고 엄포를 놓는 이들에게,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앞날이 거칠지라도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그럼으로써 당신들의 거짓, 불의, 음모를 명백하게 밝힐 것이라고 준엄하게 선언하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팽목에 왔습니다. 우리는 벗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참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기에 모였습니다. 억울한 벗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주고, 쓰러진 벗들을 일으켜 주며, 무관심과 조소와 냉대 속에서 죽음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벗들을 살림으로써, 우리가 냉혹하고 불의한 사회체제의 부속품이 아니라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사람임을 스스로 드러내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습니다. 지금 이 땅의 예수님의 형제들인 가장 작은이들,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들의 벗이 됨으로써 예수님의 참 제자인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는 팽목을 떠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곱게 마음에 담고, 우리 삶의 자리를 무관심에 맞선 연대의 마당으로, 죽임에 맞선 살림의 자리로, 가진 자의 횡포에 맞서 빼앗긴 이와 함께 하는 잔치로 다시금 만들기 위해 벅찬 가슴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입니다.


오늘 강도 맞은 이에게 기꺼이 이웃이 되어주었던 착한 사마리아인의 짧은 순례의 여정은 이제 온 세상 모든 이에게 생명, 정의, 평화를 선물했던 예수님의 십자가과 부활의 여정에 함께 하는 우리의 기나긴 삶의 여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세월호의 십자가와 함께 침몰했던 우리나라 우리사회 우리국민은 세월호의 부활과 함께, 세월호의 부활을 통해서만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에 함께 하는 믿음의 벗님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여 주셨듯이, 앞으로 더욱 힘차게 더욱 열정적으로 세월호의 부활과 우리 모두의 부활의 여정에 함께 하여주십시오.


41일 성주간 수요일 저녁 7시 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님 주례로 봉헌되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미사 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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