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0328 사순 제5주간 토요일)

2015. 3. 27. 오후 9: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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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28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요한 11,45-56 (최고 의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다)


그때에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종교와 정치>


모든 사람은 종교적 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교는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가르침이며 사람답게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종교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비록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바로 스스로가 고백하는 무신론을 통해 자신의 종교적 심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과 인간 공동체의 삶을 다스리는 것이 정치이기에, 어느 누구도 정치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흔히 정치라고 하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나 직업정치인들이 수행하는 전문적인 과업, 정당 활동 등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내 인간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포괄적인 정치 영역 가운데 극히 제한된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종교와 정치는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삶 자체가 ‘종교이며 정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간의 개별적인 삶과 인간 세상을 이루는 두 축인 종교와 정치의 경계가 어디인지, 각기 고유한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정치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심오하며 포괄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가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대상으로 한다면, 종교는 이러한 현실을 아우르면서도 동시에 이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삶의 모든 부분에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종교적인 행위를 정치적 행위로, 그것도 협의의 정치, 곧 특정 정치단체를 지지하거나,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심각한 축소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이러한 축소 왜곡을 목격합니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말합니다.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여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어나리라는 종교적 이유와 로마인들의 억압을 받으리라는 정치적 이유가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대사제 카야파는 이를 정치적 문제로 축소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예수님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종교적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지만 유다 지도자들은 신성모독이라는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로마제국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이는 곧 종교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종교를 한낱 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결정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사회참여를, 불의한 권력자들과 이에 기생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이라며 여론재판을 벌입니다.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사제복을 벗어라, 교회에서 나가라.’ 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내뱉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최고의회의 결의가 재현되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2000년 전에 그랬듯이 예수님께서 여전히 고난 받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오는 사순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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