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단상
11월은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어설픈 추위가 엄습하여 마음을 시리게 합니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부는 삭풍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서글픔을 더해줍니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은 이 늦가을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천주교회는 그래서인가 11월을 위령성월로 하여 이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미국의 한 극작가가 쓴 희곡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젊은 주부 에밀리는 일찍 죽어 저 세상으로 갔으나 단 하루만이라도 자신이 살았던 마을로 돌아가기를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그녀는 마침내 행복했던 열두살 때의 어느 하루로 돌아가는 은총을 갖게 되어 자신이 자랐던 마을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찾은 이승에서 사람들이 소중한 하루하루를 얼마나 무의미하고 맹목적으로 보내는 가를 알고 비통에 잠깁니다.
“몰랐어요. 모든 것이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어요. 이제 저는 산마루 제 무덤으로 돌아가겠어요. 아 잠깐만, 한번만 더 보고요. 우리 마을도, 엄마, 아빠도 안녕. 맛있는 음식, 커피, 새 옷과 따뜻한 목욕탕, 재깍거리는 마을의 시계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참된 가치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그러면서 그녀는 묻습니다. “살면서 매 순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일미사 책 11월호 161쪽에서 인용)
우리는 이 슬픈 계절에 용기를 갖고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묵상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호스피스 운동을 창시하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말기암 등의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환자들 수백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이 겪는 마음의 변화를 DABDA라는 단어로 표현하였습니다.
D(Denial) 부정 : 나에게 이런 병이 올 리가 없어.
A(Anger) 분노 :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단 말인가?
B(Bargain) 흥정: ‘하느님 저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 이제는 주님만 섬기며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고 하며 하느님께 매달리게 된다.
D(Desperation) 절망 : 그러나 달라지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A(Acceptance) 받아들임 : 마지막에 환자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는 3개월, 6개월 시한부 인생의 판정을 받은 환자의 절망감, 애절함, 생명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잘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3개월, 3년, 30년을 더 살 수 있겠으나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도 백년, 천년을 더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묵상해본 적이 있나요? 오늘 하루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말 알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인생은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인생은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