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두드림 예식’
/손희송 주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유학 시절인 1989년, 우연히 왕족의 장례식 중계를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장례의 마지막 부분인 ‘문 두드림 예식’ (anklopfzeremonie)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를 했습니다. 그 왕가의 마지막 황후인 부르봉-파르마 치타가 1989년 3월 14일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슈테판 대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된 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묘(靈廟)가 있는 근처 카푸친 수도회 성당으로 운구 행렬이 시작되었습니다.
행렬이 닫혀 진 성당 문 앞에 이르자 ‘문 두드림 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장을 한 남자가 예식용 지팡이로 성당 정문을 두드립니다. 성당 안에 있던 수사 신부가 묻습니다.
“누가 들어오려고 하느냐?” 문을 두드렸던 남자가 대답합니다. “치타, 오스트리아의 황후, 헝가리의 여왕이며......” 생전에 황후에게 부여된 온갖 칭호를 다 붙인 매우 긴 대답이었습니다. 대답이 끝나자 성당 안에서 수사 신부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다시 성당 문을 두드립니다. 성당 안에서 첫 번째와 똑같이 “누가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치타, 황후 폐하이며 여왕이신 분!” 그러자 “그를 알지 못하노라!”는 대답이 흘러나옵니다.
또 다시 성당 문을 두드리고, 똑같은 물음이 들려옵니다. “누가 들어오려고 하느냐?” 이번에는 대답이 전혀 다릅니다. “치타, 죽을 운명을 지닌 죄인입니다.” 그러자 “그러면 들어오너라.”는 말과 함께 성당 문이 천천히 열립니다.
조용히 열리는 성당 문은 어떤 말이나 설명보다는 힘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아무리 살아생전에는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이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불쌍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지위가 높든 그렇지 않든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죽음을 잊지 않도록 묘비에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고 새겨놓기도 합니다.
11월 위령 성월, 머리빗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다듬듯이 나와 남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 역시 죽을 운명에 처해 있고, 심판받아야 피조물임을 잊지 않을 때 좀 더 착하고 정직하게, 욕심을 줄이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결국 죽고,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 덜 미워하면서 불쌍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삶을 가꾸는 것은 현대인들보다는 옛 사람들이 좀 더 잘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을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