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춘.... 나를 비추는 거울

2009. 7. 27. 오전 10:02:20

글자
 
 
 

 

나를 비추는 거울
 
사람은
그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보면서 단장할 수 있다.
 
좋은 신발을 신고,
단정하게 셔츠를 받쳐입거나,
또는 힙합스타일로 프리하게 코디하던가.
 
그렇게 자신의 목 아래쪽
몸의 반신 정도는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단 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등과 얼굴이다.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어떤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다 해도
자신의 얼굴을 다듬을 수 없다면 헛일을 한 셈이니까. 
 
 
 
늘 거울을 가까이 하는 여자가 아닌
남자의 경우에도 단정하게 면도를 하거나,
머리에 왁스를 발라 흐트러뜨리거나,

꾸미기는 나름일지라도 신체구조상 자기 눈으로
얼굴을 보기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거울의 도움을 받게 된다.
 
거울을 통해 비로서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고,
외관으로 보여지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
가끔은 고민을 하게도 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원천적으로 무시하거나.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며..
 
 

어쨌든 자신에게 애정이 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더라.
하여 자신에 대해서 냉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면. 나의 내면중에서 내가 바라볼
수 없는 그런 부분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필요해진다.
 
사실, 그런 거울은 이미 주변에 있다.
자기를 둘러싼 타인들의 시선과 목소리는
나의 내면을 투영하고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스스로의 마음, 정신이기에 볼수 없는
가장 중요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흐트러진 용모를 가다듬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놔둘것인가?
그도 아니면 거울 을 깨어버린다?
 
진짜 용모를 가다듬는 경우는 열이면 열 전부 첫번째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내면을 비추는 거울의 경우 두, 세 번째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무시하는 것은 정신건강에는
좋을지 몰라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문제다.

타인들에 평가에 대해서
"뭘 얼마나 봤다고 아는체하나?"라고 외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열에 아홉이 그렇게 말한다면 자신이 진짜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거울이 진실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세 번째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참, 인간이란.
 
주의할 것은 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들은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을 경우
가끔 구라를 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건 조심해야 한다.
 
 머리에 붙은 나뭇잎이 황금빛 블리치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거울이 가장 믿을만 하다.
또 여러사람의 말이 일치한다면, 한 두사람의 그것보다 신뢰도가 올라가게 된다.
 
하여간, 열이면 열 다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현실의 거울에 비해서,
이런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울들을 들여다보고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법칙 정도는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칭찬은 제 3자에게 하는 경우,
비판은 내 자신에게 직접 하는 경우라면 대개 믿을만 하다.
 
반대의 경우는 보통 아부와 뒷담화일 가능성이 높다.
같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 셋 이상이 될 경우는 어느 정도 신뢰도가 생긴다.
다섯이 넘어가면 나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그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아뭏든,
그런 거울을 아예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것에 신경쓰고
나의 이미지를 가꾸어 나가는 것은 어찌보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또 거울에만 신경쓰네
어쩌네 하지말자. 하루종일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건 병이다.
자기 목적과 상태에 따라 적당하게. 그것은 본인이 가늠할 문제다.
 
어쨌든 거울을 안보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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