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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咸錫憲, 1901-1989)
평안북도 용천(龍川)에서 1901년에 태어났다. 1923년 오산(五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일본 도쿄(東京)고등사범학교를 입학했다. 그 후 졸업하고 귀국하여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40년 평양 근교의 송산농사학원(松山農士學院)을 김혁 선생으로부터 인수하여, 원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계우회사건으로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8 ·15광복 때까지 은둔생활을 하였다. 광복이 된 후, 평북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이 되었으나 같은 해 11월에 발생한 신의주학생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북한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다. 1947년 단신으로 월남, 퀘이커교도로서 각 학교 ·단체에서 성경강론을 하였다. 1956년 '사상계(思想界)'를 통하여 주로 사회비평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한국기독교에 할 말이 있다' 라는 글로 신부 윤효중(尹孝重)과 신랄한 지상논쟁을 펴 큰 화제를 일으켰다. 19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라는 글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통렬히 비판하여 투옥되었고, 1960년 이후 퀘이커교 한국대표로서 종교활동도 하였다. 1961년 5 ·16군사정변 직후부터 집권군부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62∼1963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각지를 시찰하고 돌아온 후, 언론수호대책위원회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폭력에 대한 거부'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앞장섰다. 저서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 '수평선 너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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