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노의 아베마리아 (퍼옴)

2007. 7. 11. 오후 11:03:52

글자

어린 구노는 음악 신동이라 불렸습니다

빠리 외방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학급에는

구노가 따라 잡을 수 없을 소위 '음악 천재'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였고 선의의 경쟁자였습니다

 

어느듯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가 음악을 하리라고 생각했던 구노는

신학교에 들어간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 그 친구 소식도 묻어 왔습니다

사제가된 그 친구가 빠리 외방선교회에 들어 갔다고...

 

구노는 그 친구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어느새 중국으로 발령 받아 갔다는 소식만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구노는 그 친구를 위해 틈틈이 기도를 했습니다

 

오랜 사목 후에 휴가라도 오면 옛 추억을 나누며 차를 함께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어쩌면 자신이 그 친구가 있는 중국에 가서 동양 문물도 구경하며 그 친구가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 했습니다

 

가끔씩 학교 게시판에는 붉은 글씨로  "......순교"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볼때 마다 평화속에서 주님을 믿는 순박한 사람들은 전율을 금치 못했습니다

 

구노도 물론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가슴 아파했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교의 자유가 주어진 중국이기에 내심 안도 했습니다

 

어느날 이었습니다.

게시판에 그 친구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빨간 글씨는 아니어서 안심을 했지만 내용을 읽어 본 구노는

그 친구가 " 조선 대교구 주교" 로 임명되어 죽음의 땅 " 조선" 으로 발령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구노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한번 들어 가면 살아 나오기 힘들다는..

 아니 거의 불가능 하다는..

차라리 순교하기 위해 간다는 말까지 횡횡했던 바로 그 " 죽음만이 기다리는" 조선으로 들어 간답니다

 

구노는 날마다 주님과 성모남께 그 친구가 제발 무사히 돌아와 단 한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주일날 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학교 정원에서 산책을 하던 구노는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삼종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요란하게 종이 울린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습니다

의례 그랬듯이 순교자가 또 나온 것일까....

 

불안한 마음에 달음박질쳐서 뛰어간 구노는 실신 지경이 되었습니다

게시판에는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 엥베르 주교 조선에서 순교"

 

눈물이 앞을 가려 서 있을 수 조차 없던 구노는 뒷동산으로 뛰어 갔습니다

언제나 변합없이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를 내려다 보시는 성모상앞에서 구노는 목놓아 울며

성모송을 바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Ave Maria는 성모송입니다

그렇게 친구이자 조선의 주교이자 순교자이며 후일 영광스러운 성인의 관을 쓰신

성 엥베르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 구노의 아베마리아" 입니다

 

그 지구 반대편, 인종도 모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소위 "미개인" 들의 나라에 와서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의 씨를 뿌린 성인은 지금도 명동 대성전 지하에 잠들어 계십니다

최양업신부님의 아버지이시며 전교회장을 역임하다 역시 순교 성인에 오르신 " 성 최경환 베드로" 와 나란히....

 

 

구노(Charles Francois Gounod)는 19세기 프랑스의 대작곡가이다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이며 어머니는 피어노를 잘 치는 예술적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한때 사제가 되려한 열심한 신자였다

 

빠리외방선교회 성가대장 이었을때, 당시 조선에서 전교하던 빠리외방선교회의 사제들이

순교하는 소식을 듣고 영감을 얻어 성가를 작곡하였다

이 성가는 조선교회와 순교자를 위한 성가이다

우리나라를 위한 구노의 단 하나의 성가인 것이다

댓글 1

  • 2007년 7월 12일 오전 1:14

    이런 깊은 사연이 노래에 실려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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