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푸른 날에 -장 명길

2007. 6. 5. 오후 10:25:23

글자

   이 푸르른 날에 - 장 명길

1.

햇빛이 하도 좋길래 뒤뜰에 나갔다가, 언 땅을 비집고 나온 튤립을 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눈안개가 그리도 자욱하고 바람 끝이 매서워,

봄은 아직도 멀었거니 하던 처지였다. 군데군데 잔설이 응달진 곳을 찾아 숨어있기도 했다.
그런데 한 사날 햇빛이 쨍했기로, 저토록 새초롬한 얼굴을 내밀다니... .
여간 대견한 게 아니었다. 잠시 쪼그리고 앉아 그 앙증맞은 것과 마주하자, 정녕
나는 이 긴 겨울에 무엇을 준비해 두었던가 새삼 깨닫게된다.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 선병질적인 세상살이.

고작 하루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울뿐이었다.
살아있음과 살아가기.
먹이사슬에 얽매인 삶은 그저 생존일 뿐, 생활일 수는 없다.
하루 끼니는 어김없이 챙기려 애쓰면서도, 정작 갈수록 폐허가 되어 가는 속내는
내팽개치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하루살이였다.

매일처럼.그런 중 햇살 눈부시던 날 뒤뜰에 나와,

청청한 봄을 찾아낸 것은 실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2.

이렇듯 우리가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당의 새벽 종소리.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 소리는 단잠을 깨우는 소음에 지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고단한 몸 일으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종을 울리는

충직한 종지기를 생각해 보라. 이내 그 종소리는 세상의 어둠을 깨고,

마침내 자신의 심연 깊은 곳에 찌든 앙금과 시린 마음을 뜨겁게 녹여주는

평화의 종소리가 되기도 할 것이다.

 

3.

"씨앗처럼 기다리는 거야. 움이 돋아나기까지. 땅 속에 묻혀 잠자는 씨앗처럼."
모모는 '인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두르거나 쫓기지 말아야한다.

삶은. 기다림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릴 때,

비로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리니... .

 

4.

 

언땅을 뚫고 나온 튤립을 무연히 보고 있자니 바람결에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있다.

'흙에 숨을 불어 넣으니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땅 위에 튤립을 보고있었다. 이 푸르른 날에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다.

댓글 1

  • 2007년 6월 5일 오후 11:47

    사람의 향기는 코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겠지요! 잔잔한 회장님의 향기가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아자!아자!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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