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3.16) - 사순 제3주간 금요일

2007. 3. 16. 오후 1:11:34

글자
2007년 3월 16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호세아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복음 마르코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아주 다정하고 행복하게 사는 코끼리 신랑과 개미 신부가 있었습니다. 둘은 정말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지만,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면서 다른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랑 코끼리가 먹을 것을 구하러 들판에 나갔다가 그만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해질녘까지 코끼리 신랑을 기다리던 개미 신부는 신랑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신랑의 주검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그의 주검을 본 개미신부는 너무나 슬퍼하면서 신랑의 몸 위에 올라가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과연 이 개미 신부가 계속 되풀이 하였던 말은 무엇일까요?

“이걸 언제 다 묻나……. 이걸 언제 다 묻나…….”

사랑에 과연 조건이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조건들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받아야 나도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 등등……. 하지만 그러한 이름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가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 묻습니다. 사실 그 당시 유대교에서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계명은 613개나 되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많은 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를 잘 몰랐던 것이지요.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하십니다.

“첫째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바로 사랑의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는 것인데요. 이에 대해 율법 학자는 감탄하면서 사랑 없이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아무리 많이 바친들 소용이 없다는 깨달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즉, 하느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멀리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머리로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생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느끼고 몸으로 실천할 때 진정한 사랑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해 봅시다.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서는지요? 혹시 생각만으로 머무는 사랑, 그래서 각종 조건과 이유 속에서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의 사랑 실천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말씀해 주실까요? 아래의 보기에서 한 번 찾아보세요.

1번.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2번.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 이미 속해 있다.”

3번. “너는 하느님의 나라를 꿈도 꾸지 마라.”


내 사랑 실천에 대해 주님께서 하실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목표를 가져라.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다('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중에서

세상을 향해 내딛는 이침의 발걸음.
나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오늘은 내 삶에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

나를 기다리는 것,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면 목표를 위해
사는 쪽을 택하라.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한순간도
목표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살면서 추구해야 할 목표란,
단순히 일이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만의 길을 찾아라.
그 길이야말로 당신을 진정한 삶으로 안내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면, 삶은 의미를 찾게 되며
당신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된다.

댓글 1

  • 2007년 3월 17일 오전 10:04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면, 삶은 의미를 찾게 되며 당신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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