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3.03) - 사순 제1주간 토요일

2007. 3. 3. 오전 10:55:46

글자
2007년 3월 3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신명기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6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17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19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복음 마태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운동을 가기 위해서 자전거 복장을 갖추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곧바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맞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거든요. 물론 비를 맞으면서도 자전거를 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비까지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순간 괜히 짜증이 나네요.

‘아니, 계속해서 비가 오지 않더니만, 내가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까 비가 오네?’

9시. 봉성체가 있습니다. 저는 성체를 모시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비가 아직도 옵니다.

‘열다섯 집이나 방문을 해야 하는데, 구질구질하게 비는 왜 오는 거야?’

봉성체가 끝나고 신학교 입학식에 참여하기 위해 강화로 출발했습니다. 빗줄기가 더욱 더 굵어집니다. 저는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지는 않았지만, 차를 몰고 외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날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러한 마음이 생깁니다.

‘비 좀 이제 그치지…….’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대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이 비가 좋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짜증이 났고, 비 오는 탓을 했고, 비가 좀 그쳤으면 하는 마음을 간직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을 간직했을까요? 아닙니다. 요즘에 날씨가 가물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지요. 그 분들이 보기에 어제의 날씨는 어떨까요? 아마도 주님께서 특별히 배려해주신 아주 좋은 날씨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최악의 날씨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최선의 날씨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이라는 마음을 ‘최선’의 마음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나를 낮춘다면, 즉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삶을 철저히 살아간다면 어떠한 순간에도 ‘최선’의 삶으로 멋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놀라운 기적을 팍팍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사람이란 사랑으로 완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외아들까지도 내어 놓으신 그 완전한 사랑을 본받아서 우리 역시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주님처럼 낮아져서 그 무거운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최선의 마음은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사랑의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최선’의 마음입니다. 이 ‘최선’의 마음이 항상 나의 마음에 가득하는 사순시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남의 탓을 하지 맙시다.



역발상 동물원('행복한 동행' 중에서)

거대한 초원이 있는 탄자니아는 충분한 햇빛이 쏟아지고 적당히 비가 내려 다양한 열대 동물들이 살아가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그러나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의 동물원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동물원의 한 직원이 우연히 어느 신문 기사를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얻었다.

당시 탄자니아의 한 시골 마을 주민들은 일의 잦은 습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보통 집에 문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외출 시 아이들의 안전이 문제였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대장간에서 철창을 만들어 와 어린아이를 그 안에 안전히 두고 외출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그녀는 굶주린 이리 한 마리가 철창 주위를 맴돌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곧장 나무 막대기를 들어 그 이리를 쫓아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동물원 직원은 이 기사를 보고 재미있는 아이더어를 떠올렸다. '동물원을 찾는 관광객들과 동물들의 역할을 바꿔 보면 어떨까? 관광객들을 차 안에 가두고 자연 상태로 방목 중인 동물을 구경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책임자에게 건의한 그의 아이디어는 신속히 수용되어 실행에 옮겨졌다. 그리하여 관광객들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호랑이, 숲 속에서 우아하게 걸어가는 코끼리, 무리를 지어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탄자니아 동물원은 '역할 전환'이라는 역발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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