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3.10) - 사순 제2주간 토요일

2007. 3. 10. 오전 8: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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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0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미카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복음 루카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그저께 가정 방문 중 한 형제님과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즉, 요즘 컴퓨터 산업이 워낙 빨리 발전을 해서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러면서 이 형제님께서 인터넷 고스톱을 예를 드시더군요. 얼마 전, 인터넷 고스톱에 접속하니까 자동으로 설치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 버전이 나왔다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것을 되면서 컴퓨터 계통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는지를 알겠다는 말씀이었지요. 재미있는 예이고, 공감이 가는 예이기에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웃으면서 공감을 했지요.

사실 인터넷 고스톱에서 새롭게 바꿀 것이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스톱 룰이 매번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자주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고 새롭게 프로그램이 설치됩니다.

컴퓨터 계통만 이렇게 빠른 변화를 보이는 것이 아니지요. 어쩌면 이 세상 전체가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불과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비해서 우리들은 잘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계속해서 미워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우리들의 잘못들을 떠올려 보세요. 과거에 비해서 진전이 좀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러한 잘못들이 계속 누적되어 변화되지 못하고 더욱 더 완고한 마음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고해성사를 볼 때면 어떻습니까? 매번 과거의 잘못과 죄가 반복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 부분은 저도 예외가 아니지요. 하나라도 줄여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고해성사를 볼 때면 여전히 똑같은 잘못과 죄를 반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되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오늘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 역시 자비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큰 아들의 모습만을 여전히 취하면서 내 이웃에 대한 미움과 단죄를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기의 재산을 탕진한 작은 아들을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전혀 관심 없어 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나는 작은 아들이 아니다’라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늘 큰 아들의 모습만 취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작은 아들의 입장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때 하느님께서 큰 아들의 생각처럼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찾아오고 그래? 당장 나가!”하면서 쫓아낸다면 어떨까요?

이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야 하듯이,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용서와 사랑으로 나도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제1독서의 말씀처럼 주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위해서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바치세요.



인생의 해피엔딩을 만드는 비결(박성철, '느리게 그리고 인간답게' 중에서

아끼는 친구 중에 참 열심히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활력이 넘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친구가 언젠가 자신의 좌우명이라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남들은 좌우명이 뭐 그렇게 간단하냐고 웃을지 모르겠지만 말야, 내 좌우명은 '하나 더'야. 남들이 쉬고 있을 때 하나 더,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 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난 믿어. 지금은 별로 표시가 나지 않지만 삶에서 그것들이 쌓여간다면 매우 강력한 힘이 될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가 왜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지, 왜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인정받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천재들은 남보다 '하나 더' 노력한 사람들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안 되는 일이라며 발길을 돌릴 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인생에서 즉흥곡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인생에서 인스턴트식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공이란 없습니다. 가장 흔한 단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단어, 노력과 성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열쇠입니다.

댓글 2

  • 2007년 3월 10일 오후 12:02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빠다킹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전해주시는 장봉익 형제님 대단하십니다. 신부님도 훌륭하시고 장봉익씨도 조금도 빠지지 않습니다. 다시한번 더 훌륭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2007년 3월 11일 오전 8:38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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