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3.11) - 사순 제3주일 다해

2007. 3. 11. 오전 8:46:51

글자
2007년 3월 11일 사순 제3주일 다해

제1독서 탈출기 3,1-8ㄱㄷ.13-15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제2독서 코린토 1서 10,1-6.10-12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복음 루카 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저는 올해부터 가톨릭대학교 종교미술학부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양과목이라고는 하지만 처음으로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라 약간의 긴장을 하면서 지난주에 첫 번째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이런 호칭을 듣게 되었습니다.

“교수님”

이제까지 ‘신부님’이라는 호칭에만 익숙했는데,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얼마나 어색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호칭이 매번 달랐다는 것은 깨닫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 다녔던 수영장의 수영강사는 저에게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는 제게 ‘빠다킹 신부’라는 호칭을 쓰십니다. 로만칼라를 하지 않아서 신부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때에는, ‘아저씨, 총각’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또 어떤 음식점을 가면 저에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네요.

이밖에도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은 내 안에 그러한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한 가지만 잘 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것저것 다 하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를 더 잘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못하고 딱 한 가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 세상 안에서 보다 더 행복해지라고 주님께서는 여러 재능을 주는 것은 물론 우리들이 당신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매번 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스스로 못한다는 생각으로, 주님께서는 차별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부정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사랑가득하신 분인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금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습니다. 성격 참 희한하죠? 포도밭에 당연히 포도나무를 심어야지, 엉뚱하게도 무화과나무를 심습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포도 재배인 입니다. 자기 신분이 포도 재배인 이니 당연히 포도에만 신경 써야 할 텐데, 주인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자르라고 했던 무화과나무를 자기가 한 번 거름을 주면서 가꾸겠다면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너무나도 많은 죄로 인해서 하느님 나라라는 포도밭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로 표상되는 포도원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우리들을 심으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도 동참합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켜보겠다고……. 그리고도 안 되면 그때서야 포도원에서 잘라서 버리라고 하십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셨고, 사랑으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사순시기의 한 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시면서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비록 무화과나무이지만 포도밭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비록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또 한 번 기회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사랑에 이제는 보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바로 우리들의 회개로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껴보세요. 얼마나 큰 지를…….



주님의 기도(칼 라너)

제 마음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비록 제 마음이 지옥 같을지라도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말 대신 신음소리가 나오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

모든 것이 우리를 버릴 때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에게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비록 땅에서는 서로 죽일지라도
아버지의 뜻은 생명이며,
땅에서는 생명의 끝처럼 보이는 것이
하늘에서는 당신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그리고 이 양식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나누지 않거나 배가 불러
나 자신이 가련한 피조물임을 잊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시련 중에 죄와 유혹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

죄와 유혹은 결국 아버지를 믿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듣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풀어주시고
우리를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자유와 생명 안에서 해방하소서. 아멘

댓글 3

  • 2007년 3월 12일 오전 12:24

    오늘도 빠다킹 신부님의 강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가 보건대도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회를 주는거 같습니다. 그런데 기회 포착을 어떻게 잘 하느냐에 딸린거죠.

  • 2007년 3월 12일 오전 12:34

    저의 이야기를 해 볼께요. 우리 큰아이가 고3에서 대학을 갈때 과선택에 대해서 말이 많았습니다. 아이 말이 " 저 의상학과 지원할래요' 솔직히 난 그랫습니다. 여자라면 몰라도 임마! 남자가 의상학과가 뭐냐 하면서 난 반대를 했지요. 그런데 더 강하게 자기주장을 내 세우더라구요. 그래서 하는수없이 '네 마음대로 해라' 하고 난 손을 뗐지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나 잘된거예요. 하는일에 재미있어하고 즐거워 하니 더 말할게있겠어요? 미국 출장을 자주 다니면서 자기 포부를 키우고있는 중이랍니다.

  • 2007년 3월 13일 오전 10:32

    이왕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 살수 있으면 가장 행복한 삶이겠지요..많은 격려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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