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마저 가라 앉는 것은 아닐까?

2008. 2. 13. 오전 10: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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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배마저 가라 앉는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친구들과 냇가에서 겨우 '헤엄' 이나 쳤던 내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은

부러움을 넘어선 그야말로 경외 그 자체이다.

예수님께서는 수영도 아니고 어떻게 물 위를 자유롭게 걸으실 수 있었을까?

그 방법을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어린애 같은 생각에 젖어본다.

예전에 물 위를 걷는 방법에 대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발을 먼저 물 위에 내딛고,

그 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얼른 다른 발을 순식간에 내딛는다.

그런 식으로 반복하면 물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혹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걸으셨을까?

만약 그렇다면 마치 우아한 자태로 물 위에 떠있는 백조가

물 아래에서는 자기 발로 쉼 없이 물을 차고 있는

'오도방정' 비슷한 행동을 예수님께서도 하셨을 터인데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다.

어쨌든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신적 권위를 잘 보여주시는 참으로 두렵고도 놀라운 사건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한낱 인간인 베드로가 감히 따라하겠다고 한다.

"오너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베드로는 물 위로 발을 성큼 내딛는다.

한발 두발 ……. 하지만 이내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자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 버린다.

그럼 그렇지.

겨우 헤엄 아니면 수영이나 할 줄 아는 인간 주제에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단 말인가!

물 위를 걷는다는 어리석은 망상은 집어치우고 당장 수영이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참, 그런데 내가 놓친 게 있다.

베드로는 몇 걸음 되지는 않았지만 물 위를 걷긴 걸었지 않았는가!

다른 제자들은 풍랑에 시달리는 배 안에서 나올 생각조차도 못했지만

베드로는 특유의 '무식한 용기' 를 내어 물에 빠지기를 각오하고

배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물 위를 걷는 그 가능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예수님처럼 물 위를 자유롭게 걸을 수는 없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물에 빠져야 하듯

예수님처럼 물 위를 자유로이 걷기 위해서,

더 나아가 예수님의 그 모든 능력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빠져야 하고 '배' 라는 편안과 안락이라는 기득권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제 겨우 사제생활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사제로서 누리는 기득권에 푹 젖어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고 쉽고 편안한 생활만을 찾는 내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사회 풍조에 그대로 휩쓸려 건강제일주의에 빠져

온갖 몸에 좋은 음식만을 찾고,

시대에 맞는 사목을 핑계로 최첨단 디지털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다.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게 너무 많아

그걸 두고 배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한

예수님처럼 되기는 애당초 "글렀다."

 

얼마 전에 교구 신협 직원이 돈 이백만원을 갚지 못해서

신용불량자가 된 어떤 사람을 찾아갔다가

이자는커녕 원금에 대해 달랑 팔만원만 받고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무심코 나는

"아니 돈 이백만원이 없어서 신용불량자가 되요?" 했다가 한방 맞았다.

"신부님, 신부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그런 사람 아주 많아요!"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무심한 나는

정녕 평생 물 위를 단 한발짝도 걷지 못할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보니까

사람이 죽은 후에 무게를 달면 죽기 직전보다 21g 이 덜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영혼의 무게가 21g 일지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 내 영혼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혹시 욕심 때문에 너무 무거워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안주하고 있는 사제직이라는 이 배조차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건 아닐까?

 

                                        최창덕 (프란치스코) 신부 / 춘천교구 샘밭성당 성당 주임

 

 

댓글 2

  • 2008년 2월 13일 오전 10:47

    인터넷 검색하다 샘밭성당 주임신부님이 쓴 글이 눈에 번쩍..... 옮겨보았습니다.

  • 2008년 2월 22일 오후 2:19

    샘밭성당은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벌써 그때가 그리워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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