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길잡이 : 감사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감사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믿는 사람이다.
1. 임종 시의 감사
사람은 대개 죽음이 임박해 오면 자신의 일생을 회고해 보게 된다. 철학자 플라톤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세 가지에 대해서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첫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였고, 둘째는 야만인이나 짐승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였고, 셋째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였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는 ‘잘 되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모든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가 아니라, 모든 불행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운명론적 사고라 하겠다. 이는 또한 다행스럽고 좋은 일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자세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아홉은 어디 갔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치유 받은 나병환자 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나병은 흔히 천형(天刑)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병고나 재난은 ‘죄의 벌’이라고 여겼기에, 이런 몹쓸 병은 큰 죄의 벌(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들은 몸이 썩어 들어가는 병고와 안타까움도 참기 힘든 고통이지만,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천벌 받은 대 죄인임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격이었기에, 그것은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나병환자들은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가족과 사회로부터도 철저히 격리되어 일반인과의 접촉을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병환자인 줄 모르고 어떤 사람이 접근하면 “나는 불결한 사람이요.”하며 소리를 쳐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알려야 했다.
이렇게 사람과 하느님께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나병환자들은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며 크게 소리쳤다. 예수님은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셨다. 가족들과 사회에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병이 나았다는 공인(公認)을 사제들에게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병이 아직 낫지도 않았지만 예수의 이 말씀을 믿고 사제에게로 갔다. 가는 도중에 그들의 병이 나았던 것이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것처럼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혹시 꿈이 아닌가하고 자신들의 살을 꼬집어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쁨에 취한 나머지 그 엄청난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이방인이라고 짐승처럼 멸시해 오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예수님은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며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背恩)을 꾸짖어 신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엘리사로부터 나병을 치유 받은 이방인 장군 ‘나아만’은 감사하는 자세의 모범을 보여준다.
3. 감사는 또 다른 축복을 부른다.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대체로 “감사합니다.”하는 말에 인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 얼굴 간지럽게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애써 도와주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진솔하게 감사를 표해 올 때, 그를 돕기 위한 지금까지의 고통은 안개 걷히듯 잊혀지고,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을 누구나 한 두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렇게 감사는 또 다른 축복을 부르는 것이다.
더구나 신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건강과 재능과 소유물, 나아가 나의 존재 그 자체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하느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없이는 우리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안다. 올해는 예년에 볼 수 없던 잦은 날씨로 농작물이 녹아내리고, 올해에는 일조량이 부족해서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여 걱정이 많다, 이러다가도 마지막 한 보름 동안의 늦더위가 벼 수확을 수 백 만석 증가시키는 경우도 있다.
매사가 내 손에 달려있고, 내가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직도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철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세상만사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더 나아가서 당장 이해 할 수 없는 시련과 불행에 대해서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고, ‘모든 것을 선(善)으로 이끄시는 분’ 임을 믿기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사는 감사의 제사이다.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 가장 먼저 담아 봉헌해야 할 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는 그 어떤 기도보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좋은 기도임을 깨닫자. 그리고 감사는 또 다른 축복의 근원임을 잊지 말자.
1. 임종 시의 감사
사람은 대개 죽음이 임박해 오면 자신의 일생을 회고해 보게 된다. 철학자 플라톤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세 가지에 대해서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첫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였고, 둘째는 야만인이나 짐승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였고, 셋째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였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는 ‘잘 되면 내 탓이고, 잘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모든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가 아니라, 모든 불행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운명론적 사고라 하겠다. 이는 또한 다행스럽고 좋은 일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자세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아홉은 어디 갔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치유 받은 나병환자 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나병은 흔히 천형(天刑)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병고나 재난은 ‘죄의 벌’이라고 여겼기에, 이런 몹쓸 병은 큰 죄의 벌(罰)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들은 몸이 썩어 들어가는 병고와 안타까움도 참기 힘든 고통이지만,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천벌 받은 대 죄인임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격이었기에, 그것은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나병환자들은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 가족과 사회로부터도 철저히 격리되어 일반인과의 접촉을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병환자인 줄 모르고 어떤 사람이 접근하면 “나는 불결한 사람이요.”하며 소리를 쳐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알려야 했다.
이렇게 사람과 하느님께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나병환자들은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하며 크게 소리쳤다. 예수님은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셨다. 가족들과 사회에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병이 나았다는 공인(公認)을 사제들에게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병이 아직 낫지도 않았지만 예수의 이 말씀을 믿고 사제에게로 갔다. 가는 도중에 그들의 병이 나았던 것이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것처럼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혹시 꿈이 아닌가하고 자신들의 살을 꼬집어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쁨에 취한 나머지 그 엄청난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이방인이라고 짐승처럼 멸시해 오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예수님은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며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背恩)을 꾸짖어 신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엘리사로부터 나병을 치유 받은 이방인 장군 ‘나아만’은 감사하는 자세의 모범을 보여준다.
3. 감사는 또 다른 축복을 부른다.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대체로 “감사합니다.”하는 말에 인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 얼굴 간지럽게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애써 도와주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진솔하게 감사를 표해 올 때, 그를 돕기 위한 지금까지의 고통은 안개 걷히듯 잊혀지고,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을 누구나 한 두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렇게 감사는 또 다른 축복을 부르는 것이다.
더구나 신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건강과 재능과 소유물, 나아가 나의 존재 그 자체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하느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없이는 우리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안다. 올해는 예년에 볼 수 없던 잦은 날씨로 농작물이 녹아내리고, 올해에는 일조량이 부족해서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여 걱정이 많다, 이러다가도 마지막 한 보름 동안의 늦더위가 벼 수확을 수 백 만석 증가시키는 경우도 있다.
매사가 내 손에 달려있고, 내가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직도 인생의 깊이를 모르는 철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세상만사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더 나아가서 당장 이해 할 수 없는 시련과 불행에 대해서도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고, ‘모든 것을 선(善)으로 이끄시는 분’ 임을 믿기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사는 감사의 제사이다. 우리가 바치는 헌금에 가장 먼저 담아 봉헌해야 할 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는 그 어떤 기도보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좋은 기도임을 깨닫자. 그리고 감사는 또 다른 축복의 근원임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