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들의 도보 성지 순례
지난 6월 28일부터 닷새 동안 청주교구 신학생들이 방학 프로그램으로 최양업 신부 사제서품 150주년을 맞아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라는 주제로 충북 진천 배티성지에서 충북 제천 배론성지까지 115Km를 걷는 도보 성지 순례를 가졌다.
순례의 여정
강형구 안셀모 / 대전 가톨릭 대학교 2학년
"왜 걷는가?" 이 질문은 더위에 허덕이며 걷는 긴 행렬을 지켜본 사람들이 신학생들에게 던질 법한 의문인 동시에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물론 우리 신학생끼리 나름대로 정한 대외적인 지향은 있었다. 그 지향은 걸으면서 겪어야 했던 작은 고통들을 내면화시켜 주었다.
걷는 것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등은 수시로 땀으로 흠뻑 젖고 잠시 쉬는 동안 옷에는 소금이 덕지덕지 붙었다. 옷에서 느끼는 불쾌감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발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아픔이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물집은 신경을 자극했고, 아스팔트 위를 걸어서 그런지 발바닥 전체가 욱신거렸다.
50분씩 걸은 뒤 10분 쉬는 동안 아픈 발을 주무르면서 최양업 신부님의 발의 모양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변변치 못한 신발로 험한 길을 걸었던 최 신부님의 발은 분명 많은 물집이 잡히고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투성이의 발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발이고 사목자의 발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계속해서 걸을 수 있는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나의 의지만으로는 끝까지 걸을 수 없었다. 신학생들의 얼굴이 보기 좋게 그을렸고, 다리를 다치면 서로 걱정해 주고,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등 이 기간 동안 거룩한 유대감이 진해졌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속에서 끝까지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도보 성지 순례가 끝난 다음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가보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차 안에서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왜 걸어야 했는가? 내 앞에 놓인 부르심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 언제나 이 길은 끝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삶이란 생각한 다음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삶의 여정을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위해
박진성 프란치스코 부제 / 대전 가톨릭 대학교
살아온 삶의 자리를 떠난다는 것, 그것은 나의 몫만을 내세웠던 마음을 포기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땅의 선배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떠나는 신학생들의 마음에도 과거보다는 내일의 사제로 살아갈 삶의 자세가 묻어나고 있었다. 분명 힘겹게 내딛는 걸음, 떨어지는 땀방울, 숙여진 고개 속에는 걸어온 시간보다는 걸어야 할 오늘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순례 동안은 나를 향한 생각과 갈등을 접고, 내딛는 걸음과 마주 오는 사물들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는 배론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순례길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형제들 속에서 보이고 느끼는 것을 통해 하느님과 사람들을 향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싶었다. 따라서 마주하는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묵묵히 걸어가는 형제들의 모습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떠나온 곳이 멀어지고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형제들의 발에는 물집이 늘어갔고, 내딛는 걸음은 더디고 무거워져만 갔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강한 빛을 내고 있었다. 나 홀로 시작한 것처럼 느껴지던 여정에 형제들이 함께한다는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나와 함께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은혜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노랫말은 우리의 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목적지인 배론을 앞두고 고갯마루에 둘러앉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흩어졌던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님과의 상봉을 기다리는 연인의 마음처럼 순례의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론에 하나둘 형제들이 도착했고,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 참배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정을 끝맺었다. 그런데 순례를 끝낸 형제들의 얼굴에는 여정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보다는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는 각오와 다짐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길은 새로운 길로 이어지고, 임과의 완전한 만남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함이 우리 안에 새롭게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아직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배티에서 배론까지의 도보 순례를 통해서 걸어온 시간을 만족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얼마나 말씀과 사랑의 씨앗을 뿌렸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여정을 함께 나눌 형제를 위해 사랑의 시선을 놓치지 않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걸어갈 것이다.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그리고 선배 신부님들이 걸으셨던 그 길을 우리 안에 보듬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걸어갈 것이다. 배티에서 배론만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형제의 손을 맞잡고 주님과의 완전한 만남을 위한 순례의 길을 떠날 것이다.
"주님, 내일을 향한 오늘의 발걸음을 지켜주소서. 아멘."
<경향잡지, 1999년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