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몽마르트, 전주 치명자산을 오른다
이 산은 예로부터 승암산(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뒤로는 치명자산 또는 루갈다산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곳에는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선진 문화를 수용하려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아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둘째 아들 유문철 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 마태오 일곱 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에 걸쳐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신을 거두었으나고향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 땅에 묻히지 못하고 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되었다. 그 뒤 1914년 4월 19일 전동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이 이 산정에 모셨다. 선인들이 해발 300미터 산정에 님들을 모신 뜻은 세계 교회가 '진주 중의 진주'라고 찬탄하는 동정부부 순교자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 그리고 숭고한 순교 정신을 높이 기리고 그 님들이 전주를 수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방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된 순교자 묘 바로 밑에는 기념성당이 있고, 그 아래 왼편에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오른편에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순교 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 산은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들을 흠모하는 순례자들에게는 믿음의 고향이며, 기도 공원으로 사랑받는 한국의 몽마르트(순교자산)이다.
치명자산 산지기
김봉희 세례자 요한 신부
전주 치명자산 성지 순례자 지도신부인 김봉희 세례자 요한 신부(58세)는 스스로 이름 앞에 '산직'(山直)이란 호를 붙인다. '이순 가까운 나이에 왜 하필 산지기 노릇을 자청했을까?' 하는 의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 산꼭대기 순교자 기념성당 문간에 놓인 회보에서 이내 풀렸다. "성산(聖山)에 살리라."는 그의 글은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고려 가요를 떠올리게 하지만, 현실 도피나 부정이 아닌 거룩한 산의 산지기임을 자랑스레 여기는 '성산별곡'이었다.
치명자산을 오르며 땀에 젖고, 동정부부 이 루갈다의 옥중유서를 읽으며 눈물에 젖어 지낸 다음날 점심 무렵, 산모퉁이의 사제관을 찾아갔다. 산일을 하다 말고 땀투성이가 되어 내려온 사무장 정순태 타데오 씨가 먼저 반긴다.
"전동성당이 순교 1번지임을 일깨우고 가꾼 분이 신부님입니다. 우리 신부님은 작업복을 입고 앞장서시기에 신자들이 그냥 못 지나갑니다. 깔끄머니 로만칼라 하고 지시하면 요즘 신자들 일 안 헙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김봉희 신부가 돌아왔다. 반백의 머리, 군살없는 몸매에서 산지기 삼 년의 풍모가 엿보인다. 약간 탁하고 나직한 음성이지만 열정이 느껴진다.
"이 산길이 사랑꽃길이 되고, 천국의 길목, 도장, 모퉁이가 되게 할 겁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나 사랑꽃을 피우지 못한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여기서 사랑꽃을 피우는 훈련을 해야겠지요. 작은 산이지만 성심성의껏 가꿀 겁니다." 김 신부는 동정부부 순교자가 묻힌 이 산을 10년 간 찾아와 사순절 40일 동안 매일 새벽미사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주시는 은총을 받았다고 눈을 빛낸다.
"성지 가꾸기 지향으로 올해 사순절을 보냈는데 성주간 수요일에 극적인 은총을 주셨어요. 산의 나무를 솎아 베어주다 너무 힘들어 성삼일은 쉬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성모바위 앞에 있던 나무 하나를 쳤지요. 그랬더니 거기 예수님 모습이 나타난 거예요. 20년 동안 이 바위를 바라보았지만 처음이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아도 영락없이 하늘을 우러러 탄원하시는 게세마니 예수님의 모습이었어요. 어딜 가도 이런 바위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치명자산의 상징인 성모바위는 '예수 마리아 바위'로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순절 내내 신자들과 함께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꽃을 심고 거름을 주는 개미역사로 이룩한 꽃길도, 심고 나면 비가 와 꽃들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봄비가 내리는 시기기도 했지만 하느님의 은총임을 절감했다. 성지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김 신부의 열정이 어우러진 이 작은 길은, 몇 년 뒤면 꽃나무들이 들어차 그의 소망대로 둘이 다정히 어깨를 맞대야만 걸을 수 있는 사랑꽃길이 될 것이다.
신부답게 사는 멋진 삶, 기쁘고 즐겁게 사는 맛진 삶, 그리고 참진 삶, 이른바 '삼진'의 삶을 살자는 좌우명대로 김 신부는 치명자산에 뼈를 묻을 때까지 산지기직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웃는다. 산상미사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 정신에 토실토실 살이 찐다는 신자들이 많고 보면 그의 장기집권(?)이 성공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열다섯, 열여덟 나이에 장한 결심을 하고 오누이처럼 살다간 동정부부의 훈김에 힘입어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
<경향잡지, 1999년 9월호, 취재 배봉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