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영성 (10회)
1번 유형(완전주의자) : 언제나 미소짓는 깔끔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에니어그램은 자기 발견의 길이라 한다면, 그 길을 꾸준히 가면서 자기 관찰과 자기 기억을 충실히 지속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수련 인성으로서 건강과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에니어그램 1번 유형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책임감 있고, 심부름도 일 처리도 깔끔하게 하며, 합리적이고 원칙적이다. 그래서 뭐든지 바르게 옳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개혁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어린 시절에는 '골'이 잘났다. '골쟁이' 또는 '골내기 선수'라 불리우든가, '주둥이가 또 나왔다'는 놀림을 받을 만큼 입을 쑥 내미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놀림도 받았다.
즉, "성났다 골났다. 호박죽을 끓여라. 너 먹자고 끓였니, 나 먹자고 끓였다." 그러면서, 그야말로 "화난데 부채질 한다"는 격으로 놀려댔다.
어른이 되면 1번 유형은 화가 잘나기는 하지만, 참으려고 애를 쓴다. 분노를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를 참자, 참자 하면서 분노의 감정이 한 동안 억압되기는 하지만 끝내 폭발하여 터지면서 몹시 화를 내게 되며 아주 빠른 속도로 "상기"된다.
일단 화를 내면, 하찮은 일인데도, 분노가 상승된다. 그리고 더욱이 완전주의 성향과. 항상 옳은 것과 바른 것을 찾는 성향이기에 화를 낸 자신이 미울 만큼 속이 상하고 몹시 불편하다. 화를 내는 것이야말로 한 마디로 해서 불완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씁쓸한 경험 때문에 #1은 화가 나면, 참으려고 애쓰다 보니, 얼굴이 찌프려지거나 표정이 굳어진다.
#1 어린이는 "찡그리지 마"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너무 자주 화가 나는 것을 참으며 살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생활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 살다보면 얼굴이 너무 진지하다 못해 어둡게 되기가 쉽다. 이쯤 되면 유모어는 고사하고 농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화나는 것을 참다가 기어코 터지고 화를 내고 나면, 상대방도 좋을 리가 없지만 화를 낸 자신이 더욱 불편하게 된다, 그래서 긴장하고 굳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만 튼튼해진다. #1은 이를테면, 1분 동안 화를 내고 나서는 자신이 100분 동안 속을 끓이며 불편하다. 그래서 화를 안 내려고 하는데도, 또 다시 화를 낸다. 옛날 어른들이 이런 성격을 두고 하신 말씀들이 있다. 바로 "지 신세 지가 달달 볶는구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데도, 에니어그램을 발견하기 전에는 그것을 끊을 수가 없다. 도양이나 수양의 힘으로 억제나 억압은 어느 정도 되지만 결과는 별 차이가 없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나서 전혀 딴 사람이 된 듯이 화를 안내고 온유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에니어그램을 모르면, 역시 화를 내는 성격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은혜를 까먹었다." 말하게 된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욕과 격정을 따라 사는 쪽이 강하면 이렇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몸부림치며 절규하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롬 7:19)"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4)"
#1유형은 잘 갈 때면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고 깔끔한 사람이다. 다만, 한가지 화를 내는 것 만 없으면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어째서 이런 일이 또 생기나?"를 아픈 가슴으로 묻게 된다.
그 까닭은 자기 스스로 완전주의적 성향이 당연한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함정'일 줄은 모르고 살기 때문이다.
함정을 모르니까 못보고, 못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격정에 사로 잡히게 되는 것을 모른다. 격정에 사로 잡히면 그것이 #1에게는 분노로 표출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규율적이며 나아가서는 독선적인 사람이 된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그렇게 형성되었고, 만 6세 때부터 그것은 정형화된 프로그래밍이다. 일종의 자기보존 본능의 표현이며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이 그렇게 발전되었다. 엄마나 아빠에게 또는 형이나 누나에게나 오빠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했는데 얼른 안 들어주면 골이 났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골을 내니까 되더라 하는 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모든 유형의 성격 형성이 그렇듯이 이렇게 습득과 프로그래밍과 전략의 기반이 된다.
한번 '완전'(주의)이라는 함정에 빠지면 격정이 건드려진다. 격정 다루기에 대해서는 앞서 말하였지만 (2001. 8월호) #1은 격정이 분노로 표출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에게 고무 풍선이 터질 때를 연상하게 한다.
포화 상태일때는 0.0001 미리그램 만 더 불어 넣어도 풍선은 터진다. 영어로 '마지막 지푸라기(final straw)'란 표현이 있다. 황소가 볏짚을 견디기 힘들만큼 짐을 잔뜩 실었을 때 그 위에 지푸라기 한 올 만 더 올리면 그 소가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화를 참다 이렇게 '마지막 지푸라기'처럼 하찮은 말 한마디 때문에 팡하고 터질 수 있는 각도로 말하자면 #1의 격정은 1시 방향으로 터진다. 분노를 기피하며 억압하면서도 '완전'이라는 함정에 빠지면 격정이 자극되어 결국은 억압되었던 분노가 터지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그 때에 비로소, "어째 이런 일이 또?"를 외칠 것이 아니라, 조기경보 체계를 발동한다. 화를 참으면 더 큰 화가 나게 되는 것을 안 이상 이제는 화를 참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가뜩이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이 화를 안 참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묻게 된다. 참으면 그것이 억압심리로 되어 마치 스프링을 그냥 놔두면 튀지 않는 데 비하여, 밟으면 튄다는 소박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1은 억압 심리와 거리를 두면 상대방의 잘못을 설령 지적하게 될 때에라도 부드럽게 말할 수 있다. 안 좋게 생각되거나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바로 그 때에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아버지가 되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격분하게 하지 마십시오.(골 3: 21)"라고 권고한 뜻이 깊이 되새기게 한다. 그 때 그 때 말하면 #1은 분노를 기피하거나 억제나 억압할 시간 없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게 된다. 바로 이런 경험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 '완전'이란 개념을 '성숙'이란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 밖에는 아무도 완전할 수 없다. 비록 모두가 그리스도의 완전을 지향하더라도 이 지상에서는 아무도 완전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모두가 불완전하다. '똑똑'한 #1유형들이 이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서 불완전을 보더라도 그것을 '미숙'으로 보고, 서로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로 살아가겠다는 분별과 결단을 새롭게 할 때 #1은 평정을 찾고 똑똑하면서도 편한 사람이 된다.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띄는 깔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명심할 것이 있다. 누구의 잘못이나 불완전한 언행을 보더라도 그것 역시 그 사람이 어려서 입은 상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또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되풀이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따뜻한 동정심과 이해심을 갖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