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영성 (8회) - 자기 대면과 자기 발견

2006. 11. 12. 오전 9: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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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영성 (8회) - 자기 대면과 자기 발견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난생 처음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거나 "영성 이야기"를 하거나 이야기는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아픔이 있고 괴로움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더욱이 상처를 이야기하려면 잊어버리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쉽지 않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랫말이 있듯이 아픈 상처를 묻어 두려고 한다.

문제는 아픈 상처를 그대로 묻어두기만 해서 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거나 관계가 어려워지거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일들을 따지고 보면 같은 패턴의 실수와 잘못의 반복이요, 동일한 유형의 문제가 재현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없애려 하거나 해결하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현상에 접근해서 피상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으로는 안된다. 원형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그 뜻을 소중히 여기며 존중해야 한다. 바로 이런 뜻에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상처가 흔히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나 사건 사고의 원인 내지는 동인이나 동기로 작용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통찰할 필요가 있다. 이런 통찰이 실마리를 풀어 줄 뿐만 아니라 큰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을 때는 상처가 두렵고 그것을 생각하기도 이야기하기도 두렵고 싫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대면하기를 어느 정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상처의 크기에 비례한다. 상처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거나 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알면 자유를 얻는다"는 뜻을 이와 관련하여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상처를 직면하고 자기를 대면하고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 그러면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 자기의 약점이나 단점이 생긴 것도 그 상처와 관련이 있고 되풀이 되는 문제와 실수와 잘못도 그 아픈 상처가 연결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외친다. "엄마가 싫어" "엄마 미워" 또는 아빠가 싫고 밉다고 소리친다. 어려서 그럴 뿐이 아니다. 커서도 어른이 되어 살면서도 외친다. 밖으로 큰 소리를 내지 않을 경우라도 속으로 절규하듯이 외칠 수도 있다. 실은 자기가 싫고 미운 것이다. 죽도로 노력해도 고쳐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문제나 단점이 자기를 괴롭히는데, 막을 길도 없고 피할 길도 없다. 막막할 정도로 좌절감이나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별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싫다. 그리고 밉다. 자신이 싫고 미운 것 이상으로 엄마나 아빠가 싫고 미운 것이다.

내 자신이 싫은 나의 모습이 엄마에게서 발견될 때 그 모습이 싫다.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그래서 다른 엄마가 부럽고 다른 엄마의 성격이 좋아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성격을 닮고 싶고 가지 성격이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성격이 변화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성격 변화는 수평이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 6세에 확정된 성격 에니어그램이 다른 유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기본 유형은 한번 확정되면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간다.

자기 성격을 현재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실망스럽거나 절망적으로 들릴지라도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단점이나 격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다.

둘째, 성격 변화는 그래도 가능하다. 수평이동은 아니더라도 수직이동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제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성격의 기본 유형은 바뀌는 것이 아니지만, 동일한 성격의 건강 상태가 변화하기 때문에 성격은 바뀐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균 상태에서 살아가지만 건강한 상태로 바뀌든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 즉 불건강한 상태로 변화한다.

아주 건강하면 성자처럼 되든가 이와 반대로 아주 불건강하면 정신병자나 범죄형처럼 될 수도 있다. 이런 양극단 사이를 마치 야곱의 사다리처럼 오르내린다. 에니어그램은 "영구적 운동성(perpetual motion)"이라 표현하듯이 성격 변화는 연속태(continuum)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제일 건강한 레벨 1에서 아주 불건강한 레벨 9까지 오르내리며 거듭된다.

셋째, 제각기 성격 유형을 발견하고 났을 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고 흔히 묻게 된다.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말하는 인성 유형은 따지고 보면 진정한 "나"가 아니다.

이는 거짓 인성이다. 그러므로 이것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참 인성 참 나를 찾고 본성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첫걸음이다.

따라서 자기 발견을 하는 과정에서 성격 유형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판박이(stereotype)로 이해하거나 취급하면 극히 위험하다. 누구라도 성격 유형을 발견하고 에니어그램을 파악할 때는 그 사람의 단점이나 약점 격정 또는 강박충동(강박증)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를 어떤 유형으로 이해하며 고정관념으로 굳히는 것은 그를 그의 단점이나 강박증에 붙들어 매는 격이 된다.

따라서 나 자신이 나의 성격 유형을 발견하고 확인(동일시)하는 것은 이를테면 초기의 경과조치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나와 내 성격을 동일시 한 다음에는 그것에서 떠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비동일시"라 한다. 나의 성격이 진정한 "나"가 아닐진대 진정한 나를 찾아 나서려면 거짓 인성으로서의 나의 성격과 비동일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나의 에니어그램은 1번 유형인데, 화를 잘 내는 특징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내가 자기를 발견하며 성격 유형을 확인하였다고 하여 나 자신이나 만들어 언제까지나 나를 화 잘 내는 사람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에니어그램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은 나의 격정이나 강박충동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잘 다룰 수 있는 길을 찾고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내가 나의 성격과 나 자신을 비동일시 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로 꼭 이어져야 한다.

참 나를 발견하고 본성을 회복하며 되찾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에니어그램의 과정은 첫째 나의 에니어그램을 확인하는 것인 바, 이를 "동일시(Identify)라 한다. 둘째는 나 자신과 나의 성격은 동일한 것임이 아님을 발견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바, 이를 두고 "비동일시(Dis-identify)"라 한다. 끝으로 헌 옷을 벗듯이, 옛 사람을 벗어 던지고 새 사람으로 옷 입듯이 할 때 참 나를 찾고 본성을 되찾아 나서게 된다. 이를 두고 "회복(Restoration)"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역동성과 연속태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또 이루어낸다.

"I⇒D⇒R" 과정을 치열하게 거쳐가는 것이다. 의식적 노력과 자발적 고난을 인내심으로 견디며 이겨내며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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