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말하는 인성이 나타내는 특징은 격정과 강박충동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성격의 에니어그램은 달리 말해서 격정의 에니어그램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격정을 잘못 다루 면 우리의 성격 또는 인성이 우리 자신에게 동지가 되어 더욱 효율적으로 아름답게 살도록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원수처럼 우리의 삶을 망쳐 놓기가 일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격정으로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이는 더 큰 일이다. 원형심리학에서도 말 하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아야 하듯이, 격정도 없애려고 나설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격정은 파괴적인 힘도 있지만, 또한 창조적인 힘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면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먼저 격정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즉 개념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가 장점과 함께 단점이 있듯이, 격정의 다른 면이 열정이 핀다. 다만 격정으로 힘이 빠져나가 면서 부정적인 에너지가 되는 것을 막고,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에너지로 솟아 나오도록 방향을 잡 아주는 것이다.
"passion은 복이다. passion은 위대한 교사다." 라는 면이 있다. 격정이 아니라 열정으로 표 출되도록 다스리면, pa- ssion은 동지요, 위대한 교사요, 크나큰 복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 을 잘못 다루든가 생각도 없이 소홀히 방치하고 보면, 결과는 세월이 가도 나이를 먹어도 늘 똑같 은 실수와 똑같은 문제와 사고로부터 헤어나질 못한다. 그래서 "우째 이런 일이 또?"를 외치면서 괴로워할 뿐,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곳에 다니면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지도하는 마이클 라이스 박사(Dr. Michael Ryce)도 책의 제목을 "Why Is This Happening To Me Again?(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또 일어나는가?)"라고 하였다. 그는 정신력(mind energy)을 어떻게 다루며, 그 힘이 어떻게 표현되고 적용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격정이나 강박충동이 열정으로 표출되도록 변화시키는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격정과 강박충동은 어려서 상처를 입은 데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격정을 상처로 이해하는 것 이 중요하다. 흠이나 결함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래서 격정을 탓하지도 말고, 감추려 하거나 그것 과 싸우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더욱이 그것을 미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야 한다. 격정은 야생마와 같다. 겉잡기 어려운 힘이 있고 거칠다. 그러나 잘 조련하고 다루면 준마가 천리마가 될 수 있다.
격정/열정은 화도 되고 복도 된다. 함정도 되고 뜀틀도 된다. 격정에 영향을 받거나 휘둘리 는 것은 마치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로 떨어지면, 각기 자기 격정의 에니어그램이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격정에 휩싸이고 강박충동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데, 자신의 부끄러움 을 자랑이나 하듯이 드러내게 된다. 자신도 괴롭고 남은 더욱 괴롭히며 서슴없이 상처를 입힌다.
격정은 우리들 속에 있는 여섯살 짜리가 화가 나든지 불만을 느낄 때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 기를 드러내게 만든다. 겉 사람이 나이를 몇 살을 먹었든지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사람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기능 중심 가운데서 특히 생각하는 지성과 느끼는 감성과 움직이는 행동 중심들 사 이에서 상호 작용이나 긴장이 약해지고 난조를 보일 때 격정이 표출되는 것이다. 지성과 감성과 행 동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깨질 때, 또는 어느 한가지 중심만이 다른 것을 압도할 때 격정이 나타난다.
옛말에 "늙으면 애가 된다." 라는 말이 있다. 지성과 교양과 여성이 인성을 억제하거나 통제 할 때는 격정이 그래도 어느 정도 다듬어지거나 다스려졌는데 이런 억제력이나 통제력이 약해지든 가 의식적인 사용을 소홀히 할 때 속에 있는 여섯살배기가 제멋대로 격정을 노출시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그렇다면, 걸림돌이 되거나 함정이 되는 격정을 어떻게 하면 뜀틀이나 도약대가 되게 할 수 는 없을까? 그것은 격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 될 것이다. 이를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에니어그램을 터득하는 것이라 할 것이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격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하겠다.
첫째, 격정을 붙잡아라. 그저 격정을 부정하지도 말고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가장하지도 말 라.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말라. 너무 빨리 없애려 하지도 말고 판단하지도 말고 그대로 놔두며 현실 로 받아들여라. 야생마의 고삐를 꼭 잡아야 하는 것처럼 놓치지 말고 꼭 붙들어야 한다. 길길이 뛰 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어도 꼭 붙잡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얼마쯤 그런 상태를 유지하다 보 면, 천천히 그것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둘째, 관찰하라. 똑바로 보라. 그것이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깔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등을 관찰하라. 오랫동안 살피고 연구하라. 에니어그램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자기관찰이 강조된다. 자 기 관찰의 핵심이며 동시에 중요한 출발점은 자기의 격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전에는 멋도 무르고 격정을 터뜨리면서 화를 내거나 싸우거나 사고를 냈던 것에 비하여, 자기의 격정을 발견하고 확인 하고 난 뒤부터는 그것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격정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관찰하라. "내가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가?" "내가 왜 화가 나서 격분하는가?" "왜 내가 판단적인가?" 등을 관찰 하라. 이런 관찰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집중하며 관찰하는 수련을 거듭하다 보면, 그것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성격과 자 신의 본성 사이에 간격을 두고 살피게 된다. 그러면 앞서 말한 것처럼 '조기경보체제'를 가동하게 된다.
셋째, 그 속에 있는 최선의 힘을 믿어라. passion 속에는 기막힌 힘이 있는데, 그 힘은 가장 아름다운 창조적 힘이 될 수 있다. 끓어오르는 격정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충분히 오랫동안 관찰하 면, 무엇인가 불편하게 느껴지던 것은 슬며시 빠져나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펄펄뛰는 야생 마를 그대로 뛰도록 지켜보면서 거칠게 뛰던 힘이 사그러 들면서 힘을 조절하는 때를 기다리는 것 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심술부리고 투정하는 손자나 손녀를 방긋이 웃으며 지켜보는 할아 버지에 비유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와 반대로, 격정 속에 있는 힘을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도무지 살기가 귀찮은 듯이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체념한 것 같은 사람도, 누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든지, 격정을 불러일으키면, 순 간적으로 무서운 힘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힘이 격정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힘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격정과 열정이 그러니까 강박충동을 조절하면서, 속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이를 달래고 나면, 거기서 나오는 힘은 미움과 공격성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사랑과 협력의 힘으로 표출 될 수 있 다. 격정이 공격적이거나 파괴적인 힘으로 표출되기 쉬운 반면에 그 속에 있는 최선의 힘을 믿고, 어느 만큼 인내심과 여유 공간을 마련할 정도로 붙잡고 관찰하게 될 때,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놀라 운 창조적 힘이 거기에서 우러 나온다. 그래서 결국 나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어떤 존재나 행동을 지향하는 데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뜻에 따라 살아가는 조화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