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바로 하느님 나라 그 자체 - 하성호 신부님

2006. 12. 1. 오후 8:37:40

글자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필레 7-20/ 루카 17,20-25)2006.11.16.

너무나 많은 고통 속에 일생을 사는 어떤 분은 부활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처럼 고통을 당하며 산 것도 정말 지긋지긋 한데 부활한 듯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가혹한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는 가련한 그 한 사람의 운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도 아픕니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를 그 수렁에서 꺼내줄 수 있는 분입니다. 스스로 자기 머리채를 붙잡고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친구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들, 세리들, 창녀들과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사회에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멸시와 핍박 속에 비참하게 놓인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였겠습니까? 아무런 희망도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인간 대접을 기대조차 하지 않던 자신들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분명 구원 그 자체였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기다리는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이셨습니다. 신천지는 예수님과 더불어서 버림받던 자신들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바로 하느님 나라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과 더불어서 있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이 세상살이가 힘들다 보면 각자가 기다리는 주님의 모습도 다를 것입니다. 궁핍한 이들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시는 주님을 기다릴 것이고,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말끔히 병을 고쳐주시는 주님을 기다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주님을 기다리십니까? 우리가 처한 현실의 상황에 따라 기다리는 모습도 다양하겠지만, 주님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든지 우리 존재를 감싸주실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현대인들은 하느님의 나라와 예수님을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보다는 자신의 현실적인 갖가지 “누림”이 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 언젠가는 그들도 그 모든 “누림”은 하나의 현실적인 방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을 채워주실 분은 오로지 한 분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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