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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화요일2007.6.5.(토빗 2,9-14/ 마르 12,13-17)
막아주지 않아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주님이 참새들을 근접하지 못하도록 해줄 법도 한데, 그것은 고사하고 하필이면 참새가 똥을 토빗의 눈에 누도록 버려두시다니 얼마나 섭 섭했겠습니까? 가끔 우환을 당한 사람들이 “나는 죄라고는 신앙생활 열심히 한 것 밖에 없는데!”하며 한탄을 하곤 합니다. 어느 종교에 있어서도 그런 불행을 당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그와 같은 말 을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시고 십자가에 비참하게 처형당하는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 까?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사랑 때문에 따르는 고통이라면 대게는 견디어 내고 받아들 입니다. 박해 시절에 하느님을 사랑한 순교 선열들이 겪었던 간난신고(艱難辛苦), 또 일제 때 조국을 사랑한 애국지사들이 겪었던 고초(苦楚)를 생각해봐도 사랑은 고난을 견디게 하고 죽음을 뛰어넘게 합니다.
아들이고 싶은 심정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겪는 희생은 오히려 당사자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기까지 합니다. 흔히 우리 주위에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희생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사랑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 문제는 고통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우리는 자꾸 고통을 바라보며 한숨짓는데, 이젠 그런 삶의 방 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랑을 자꾸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고통의 시간에도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 하는 이를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내 삶의 고통을 생각하기보다 나의 사랑하는 하느 님을 바라봅시다.
주어진 새끼염소도 마다합니다. 의인으로 살다가 당한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토빗의 자세 에서 우린 다시 한 번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고통은 세속의 위로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만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