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체험의 원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한다.
그것을 믿으라 하기에 믿는다며 고백을 하지만
다시 살아나신 그분이 내 몸에 느껴 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분이 부활하셨다고 고백하기 전이나 후나
내 인생에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
그분이 부활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믿는 것은 그분의 부활이 아니라
그분이 부활했다고 말하는 남의 말(소문, 교의)이 아닌가?
2천 년 전 그분의 제자들도 처음엔 그분의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이 다시 살아나 누구누구에게 나타나셨다는 소문을 들었고
동료들이 부활하여 나타나신 그분을 체험했다는 말을 듣긴 하였지만
그 체험은 그때 그 순간의 일이었을 뿐
나타나신 그분은 그들에게서 다시 사라지곤 했다.
그들에게 그분은 그렇게 죽은 자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이 부활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절망과 좌절의 나날을 보낸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는 베드로나
그를 따라 나선 동료들의 마음엔 주님은 죽어 있다.
주님이 죽어 없는 세상에서
그물을 던지고 당기는 그들의 어깨는 힘이 빠졌다.
신명이 나지 않으니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어도
고기는 한 마리도 걸려 올라오지 않았다. (요한 21, 1-3)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주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은 그런 동료들을
그분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시던 성 목요일의 현장으로 안내한다.(요한 21, 9-13)
빵처럼 자기의 몸을 쪼개는 자만이 그분이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몸을 쪼개어 남에게 나누어주는 자만이
자기가 새로 태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 나타나셨다가 곧 사라지셨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 그들의 몸을 쪼개어
서로에게 나누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일게다.
그분의 성삼일에 온 몸으로 동참하는 날
그들은 그들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체험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그들 한 가운데 살아계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1. 예수는 부활하셨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고백을 하게 한 삶의 원천으로 자신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고백을 하도록 하였는가?
복음사가는 제자들을 끊임없이 그 원천으로 안내하고 있다.
*2. 종교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의 머리에 주입시켜 입으로 고백하도록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죽음의 현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여
사람들이 부활의 삶을 살도록 해주는 자이다.
종교인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체험으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3. 종교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믿음이 하늘에서 떨어진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암기해야 할 교의 이상임을 안다.
그는 교의와 율법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성찰한 언어로 이야기하며
그렇게 또 사람들이 교의의 언어를 성찰하도록 한다.
언어를 성찰하는 자만이 부활의 경지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부활은 교의 이상이다.
*4. 부활의 영성 1과 2 참조.
- 이제민 신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