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88 꿈나무, 88 땔 나무 - 이종현 스테파노 신부님

2007. 4. 20. 오전 8:56:06

글자

    88 꿈나무, 88 땔 나무 

 

 

 

 

   완연한 봄기운이 무르익는 4월이 오면 저는 88년의 봄이 떠오릅니다. 88년은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고, 올림픽이 열렸던 해입니다. 그런 까닭에 88학번은 소위 ‘꿈나무’ 학번이라 불렸습니다. 저는 꿈나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꿈을 머금은 나무, 혹은 꿈을 실현하는 나무 등등 희망이 가득한 단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고서 새로운 말을 들었습니다. ‘88 땔 나무’라는... 한 동안 ‘땔 나무’라는 말이 마음속에 불안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오늘 1독서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사도들의 확신에 찬 진술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 때문에 모욕 받았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기뻐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모욕조차 기쁨이 되는 신앙, 그것이 부활에 기초한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티베리아스 호수에 나타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제자들을 향한 애틋한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모습에서는 가슴이 저미도록 아프기도 합니다. 이어서 “나를 따라라”하시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 사실 저는 아직도 그 부활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겪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내면적인 욕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창한 희생이나 자선. 눈에 보이는 봉사. 그것만이 부활을 위한 죽음은 아닐 것입니다. 일상의 안에서 작지만 필요한 곳에서의 봉사.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오직 주님만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생이 곧 죽음이며 부활의 길일 것입니다.


   꿈나무에서 땔나무로의 추락은 이제와 생각하니 참으로 필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언제나 꿈나무일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땔나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불살라 다른 이들에게 따스함을 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곧 죽음이요, 부활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저런 말보다 먼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1독서의 사도들처럼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따라라.”


- 이종현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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