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성주간 월요일 - 이장환 신부 (부산 가톨릭 대학교)
우리는 어제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교회의 전례력 안에서 1년 중에 가장 거룩한 성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전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주님 수난 성지주일)과 예수님의 죽음 예고(월요일), 제자들의 배반(화요일), 유다의 배반(수요일)을 알립니다. 성 목요일에는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고, 성 금요일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성 토요일에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그리고 부활 성야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합니다. 이 시기는 예수님께서 배반과 수난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류에게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주셨음을 경축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하며 지내온 40일 간의 사순시기를 마무리하고 그 결실을 맺는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된 장소는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적이 있는 베타니아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고 예수님뿐만 아니라 유명인사가 된 라자로를 보기 위해서 많은 유다인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유다는 이것을 보고 그 향유를 살 돈이면 많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텐데 라고 불평을 하자 예수님께서 내 장례 날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마리아를 놔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마리아의 행동과 유다의 불평에 대하여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도 아니고 발에다 붓는 것은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드리는 행동은 지극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오늘 보여준 행동은 겸손과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눈에 비친 그 값비싼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의 값어치는 있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의 값어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일반적으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라고 말합니다. 5천명을 먹이신 이적 사화(요한 6장)에 보면 그 군중을 먹이는데 2백 데나리온 어치 빵도 부족하겠다고 필립보는 말합니다. 아마 삼백 데나리온이면 5천명도 넉넉히 먹일 수 있는 빵을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 정도면 유다의 불평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편을 드시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편을 드십니다. 평소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왜 그렇게 하셨나가 궁금해집니다. 저는 그 실마리를 마리아의 행동을 바라보는 유다와 예수님의 관점의 차이에서 찾아봅니다.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에서 오직 경제의 논리만을 생각하는 반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진심을 보십니다. 경제논리만으로 마리아의 행동을 보면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경제논리에는 사랑이 빠져있습니다.
여러분! 예리고로 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기억하시죠. 한 생명을 살리고 여관에 지불한 경비로 단 두 데나리온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냥 스쳐지나간 사제나 레위사람에게 그 단 돈 두 데나리온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을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급 향유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표현한 지극한 사랑을 보고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편을 드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다로부터 배반당하시고 베드로로부터도 외면당하실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그런 지극한 사랑을 바라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난의 길을 준비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리아와 같은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수난의 길에 함께 해달라고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들과 언제나 함께 할 수는 없으니 바로 지금 나와 함께 해달라고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마리아가 보여주었던 그 지극한 사랑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마리아의 그 사랑으로, 그 사랑의 향기로 이제 우리가 이 세상을 가득 채워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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